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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Aug 03. 2022

가을이 물씬 내려앉은 해오름 예술촌

  - 가을여행 2018


  드디어 독일 마을에 가는 날이다. 남해에 대해 어디가 좋은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전혀 몰랐던 내게 정보 없이도 가장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라 여겼던 곳이다. 지도상으론 바람흔적 미술관과 편백나무 숲을 들러서 갈 수 있는 루트였다. 일단 내비를 바람흔적 미술관으로 찍었다. 생각보다 멀었다. 24킬로미터. 그럼 독일 마을까지는 한참 더 멀겠구나 싶었다. 


  아름답고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한 7분이나 갔을까, 무심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 ‘해오름 예술촌’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한쪽에 작은 건물 벽면의 근사한 담쟁이넝쿨과 알록달록한 벽화도 보였다. 

이상하네. 해오름 예술촌은 오늘의 행선지들을 모두 지나, 독일 마을까지 지나야 나올 길인데, 그럼 벌써 편백나무 숲을 지나쳐버렸다는 건가? 어쨌든 눈에 띄었으니 여기부터 가보자. 


  폐교를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들었다. 입장료 2천 원. 남해는 어디 가나 입장료를 내는구먼 하며 조금 불퉁거렸다. 그러나 입장권을 들고 몇 발짝 내디딘 순간, 나의 불퉁함은 온 데 간데  없이 날아가 버렸다. 

  어디선가 휘익 불어온 바람에 쏴 아악 하는 마른 낙엽 쓸리는 소리, 늘어선 벚나무 가로수 사이로 떨어지는 잎들과 바닥에 쌓여있던 잎들이 함께 휘날리는 모습에 나는 온 마음을 주어버렸다. 그 한 장면, 그 한순간 만으로도 내게 해오름 예술촌은 꿈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크지 않은 운동장이었던 것 같은데 군데군데 다양한 재질의 조각품으로 제작한 벤치들이 놓여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각 실마다 수많은 작품과 물품들이 뒤섞여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다. 다만 전시라기보다는 그냥 그것들을 조금 정리해서 보관해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굳이 이렇게 많은 것들을 모아두어야 했을까?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영박물관에 갔을 때, 너무 많은 약탈 유적들을 숨 막힐 만큼 빽빽이 모아둔 것을 보고 당혹스러웠던 것이 생각났다. 감상의 여지보다 그냥 물량으로 들이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먼지를 뒤집어쓴 채 겹겹이 쌓여 있는 가구나 장식품들. 그중 수작들을 골라, 짜임새 있게 전시해두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건물을 나와 그곳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까 하고 갔는데 문만 열려있고 주인이 없었다. 그 옆에는 빛바랜 연초록의 목재 창틀로 이어진 작은 단층 건물이 있었다. 벽에는 담쟁이넝쿨들이 뻗어있고 빨간 열매 송이가 달린 나무와 꽃들 사이로 숨어있는 듯 얼굴을 내민 건물. 

  화장실이었다. 절대 화장실 같아 보이지 않는, 지금껏 내가 본 중 가장 고풍스럽고 예쁜 화장실 건물이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화장실 풍경



  정원 담 너머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햇빛을 받아 무수히 반짝이는 물비늘들이 눈부셨다. 흡족한 마음으로 그곳을 내려와 독일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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