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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Aug 03. 2022

독일마을, 쿤스트 라운지에서 휴식을

  - 가을여행 2018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였던 것 같다. 너른 주차장이 보이고 '원예 예술촌'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섬이 정원 주인에게서 어렴풋이 들었던 곳이다. 관람 시간이 2시간 정도 걸린다는 설명도 있었다. 그렇다면 꽤 큰 규모일 것이다. 기대감을 안고 입장료 5천 원을 낸다. 


  규모는 큰데 아름답진 않았고 자연스럽지도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애초에 섬이 정원 같은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거라 예상은 했으나 커서 휑하고 곳곳에 출몰하는 스낵 부스들이 시야와 마음을 언짢게 했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각국의 가정 정원들을 집 건물과 함께 배치해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그 나라의 정원 양식을 대표한다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했고, 볼거리가 되기에는 또 한참 미흡했다. 가정의 정원이 본래 특별할 것이 없다고 전제하더라도. 


  딱 한 군데 평범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곳이 있긴 했다. 산꼭대기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집이었다. 바다를 향해 등을 보이고 있어서 정면은 볼 수 없었지만 집 뒤로  통하는 문 쪽엔 알록달록한 잎을 달고 있는 아담한 나무들이 있고 거기서부터 마당까지는 아마 잔디로 덮여있는 것 같다. 

  틈새로 조금 들여다보이는 전경에는 탁 트인 바다가 보이고 있었으니 분명 그 집의 전망은 최상일 것이다.

아무런 꾸밈이 없다 해도 그곳의 정원은 바다를 품고 있으니 다른 것들은 오히려 사족이 될 터였다. 


  근처의 언덕을 지나 ‘나가는 곳’이라는 팻말이 가리키는 쪽은 포장된 보도와 그냥 통행을 위해 정리된 것 같은 지루한 길이어서 무시하고 그 길 아래 산길 같은 곳으로 내려섰다. 그곳에도 더러 벤치 같은 것이 놓여있긴 했지만 그다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길이었다. 도시의 소음과는 멀지 않았다. 그곳은 금방 출구와 이어졌고 나는 아마 어딘가를 빼먹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기운이 다 빠졌다. 가족 단위의 나들이에는 적합할 수 있겠으나 혼자 여행하며 즐기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다시 천천히 차를 몰아 독일 마을 탐방에 나섰다. 그러나 차로 움직일 만큼 큰 곳은 아닌 것 같았다. 길 양편으로 그냥 몇몇 독일식 음식, 주로 소시지나 맥주 등을 파는 주점 겸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간판, ‘쿤스트 라운지’였다. 광주에도 같은 이름의 독일 풍 레스토랑이 있다. 주차장까지 있어서 그곳에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널찍할 뿐 아니라 바다를 향한 쪽 벽면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닿는 긴 병풍식 창이 활짝 열려있었다. 


  그 창에 이르기까지는 일반 테이블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거기서부터는 창을 경계로 안쪽은 반쯤 드러누울 수 있는 1인용 빨간색 앉은뱅이 소파와 정말 작은, 역시 앉은뱅이 테이블이 세트로 영화관처럼 모두 밖을 향해 줄지어 있었다. 창 바깥쪽은 넓은 테라스에 역시 바다를 향해 줄지어 늘어선 흑과 백의 앉은뱅이 소파들이 있었고 그곳은 많은 젊은 남녀들로 붐비며 활기가 넘쳤다. 


  나는 창 안쪽의 두 번째 열에 자리를 잡았다. 옆 소파에 가방을 던지고 반 누운 자세로 몸을 부렸다. 창밖에서 신선한 바람이 서늘한 공기와 활기를 몰고 들어왔다. '아, 좋다!'

  이 소파는 정말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보기에도 스펙터클하고 모던할 뿐 아니라 편안해서 지친 여행자에게 자유로움과 휴식을 만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난 커리 소스와 난을 곁들인 소시지와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조금 비쌌지만 내 테이블에 함께 세팅된 그 요리와 맥주 한 잔은 24,000원으로 누리게 된 최고의 사치였다. 그곳의 풍경은 내 앞에 있는 맥주만큼이나 상큼하고 근사했다. 난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혼자 먹기엔 많은 양이라 남겼지만 맛도 괜찮았고, 맥주 한 잔에 긴장도 풀려서 소진되었던 에너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몸도 한없이 풀어져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룹톡을 본 훈이는 맥주를 한 잔 더하라고 했다. 대낮부터 꽃례가 되어 실실거리고 다닐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더니 재희는 그러면 숙소에 들어가 한 숨 자고 일어나서 저녁 마실을 나오면 되겠다고 한다. 


  어떤들 어떠랴. 난 혼자 자유로운 여행 중이고 너무 멋진 곳을 찾아와 너무 흡족한 휴식을 즐기고 있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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