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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Aug 09. 2022

멋대로 여정을 바꾸어 무위사로
미황사로

  - 무위사에서 구례까지, 2017


  해남으로 가는 길에 불쑥 무위사 이정표가 나타났고 그곳을 거의 지나치려던 순간, 나는 급히 핸들을 틀었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가보자. 지루하고 볼품없던 고속국도와 달리 금방 호젓한 시골 길이 이어진다. 언제였을까? 20년? 30년? 그렇게 오래전에 미정이와 여기에 온 적이 있다. 


  주차장 가까이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다. 전에 왔을 때 보았던 그 작고 적막하던 무위사가 아니다. 입구에서부터 난데없이 생겨난 절 부속 건물들과 갓 칠한 듯 한 단청이 너무 낯설다. 들뜬 화장을 하고,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머리에 힘도 주고, 나름 멋을 낸다고 했으나 요란하기만 할 뿐 촌스러운 여자, 딱 그 분위기다. 


  그래도 계단을 오르면서 보니, 문간 너머로 시린 하늘과 하얀 구름, 줄기만 남은 커다란 나무 가지들이 산사의 정취를 불러일으켰다. 본채에 들어서니 긴 세월 바래고 또 바래서 거의 희어진 목조 건물의 빛깔이 편안하다. 그 유명한 무위사의 맞배지붕 대웅전이다. 물기가 쫙 빠진 목조 건물은 부서질 듯 가벼워 보였다. 그래, 오래된 유적이란 이렇게 퇴색한 맛이 있어야지.







  잠시 마당 한 켠의 석탑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개울 건너편에 별채 같은 작은 건물이 보였다. 아래로 내려가 개울을 건너고, 건물 계단 옆에 나무가 한그루 서있는 곳에 이르렀다. 오래전 그 나무 아래 누워 하늘을 보던 미정이는 참 자유로워 보였었다. 난 왜 그렇게 눕지 못했을까? 그때만 해도 내 몸은 내 의식만큼이나 둔중한 틀에 갇혀있었나 보다.


  무위사를 나와 해남 '땅끝'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바다인 듯 커다란 호수인 듯 이런 곳이 보인다. 물 가까이로 새들이 오리처럼 떠있다. 낯설고도 참 아름다운 풍경.









  땅끝으로 바로 가려는데, 이번엔 도중에 미황사 이정표를 만났다. 예전에 미황사에 처음 들어섰던 순간, 뒤로 펼쳐진 웅장한 바위산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다시 보고 싶었다. 10km 정도의 거리라고 했다. 지금 세시 반이니까 여기 들렀다 가면 땅끝에서 하루 여행을 마감하기에 적당한 시간이기도 했다.


  차로 지나가는 그 길은 조금 긴 산책을 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중턱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니 쨍하니 춥다. 산사에 오르는 길은 모두 이렇게 서늘한 공기를 머금고 있어서 머리를 싹 비워준다. 여행이란 것을 별로 해보지 않았던 시절, 미황사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런 신기함까지는 아니었지만, 색다른 모습인 것은 여전했다.







  이제 늦은 오후가 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예약해둔 땅끝 숙소에 가보면 혹시 중리 해안의 갈라지는 바다를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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