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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4. 2021

재스민과 함께 한 세 도시

- 축제행렬에 휩쓸린 밤, 재스민을 만나다

   

  그라나다에 도착해서 시내까지 공항버스를 타고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공항버스 안에서 옆에 앉은 걸이 내가 내릴 지점을 가르쳐 주었으므로. 버스에서 보니 하얗게 눈이 덮인 큰 산이 보였다. 추운 지방도 아니고 여름을 코앞에 둔 완연한 봄인데 아직 그렇게 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게 신기했다. 일 년 내내 저러냐고 옆자리의 그녀에게 물었더니 여름이 되면 녹는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긴 내렸는데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어떻게 호스텔을 찾아갈 것인가? 도로 이름과 번지만으론 현지 사람들도 그곳이 어디인지 잘 모른다. 그래도 서툴게 지도를 봐가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서, 가까스로 호스텔을 찾았다. 여성 전용으로 침대 4개인 방이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고, 맞은편 침대에 소지품들만 흩어져 있었다. 난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좀 전에 버스에서 내렸던 그 광장 쪽으로 가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부활절 축제 퍼레이드였다.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긴 거리들을 가득 메운 인파. 입이 쩍 벌어졌다. 웬 행운이람? 난 사람들을 따라 분수대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며 행렬을 구경했다. 


 

  


  kkk 단원들 같은 두건을 쓴 행렬을 선두로, 우리나라의 상여를 맨 풍경처럼 사람들이 사각형의 커다란 장식을 매고 있는 행렬, 상복 같은 검은 드레스와 베일 차림의 여성들, 군악대, 그리고 어린이들의 행렬 등이 뒤를 따랐다.

  여성들과 아이들은 팔뚝만 한 두께에, 어른 팔만큼 긴 촛불을 들고 있었고, 구경하는 아이들은 거기서 떨어지는 촛농을 받아 둥근 공을 만들고 있었다.     





  행진을 볼만큼 다 봤다 싶었을 때, 저녁을 먹어야겠는데 현금이 없었다. 그라나다 오는 길에 택시비를 포함해 남은 35유로를 다 써버려서, 수중에는 500유로짜리 고액지폐 밖에 없었다. 은행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고, 호스텔에서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리셉션 레이디의 말에 따르면 일반 가게에서도 아마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난감했다. 


  걷다 보니 고급스러운 식당가가 보였다. 제일 좋아 보이는 식당의 노천 식탁에 앉아 500유로짜리 지폐를 받느냐고 웨이터에게 물었더니 매니저가 와서 가능하다고 했다. 샐러드와 연어요리, 화이트 와인까지 아주 흡족하게 즐기고 29유로, 3만 원 조금 넘는 돈으로 지폐 문제도 해결하고 호사도 했다.     





  식당에서 나와 조금 걷다 보니 그 행렬과 또 마주치게 되었다.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이번엔 좁은 골목이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조명과 음악도 낮에 보고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생생했다. 다른 거리로 접어들었는데, 그 거리에서도 또 행렬과 마주쳤다.

   큰 길이든 골목길이든 그 긴 행렬을 사이에 두고 관광객들이 꽉 들어차고 엉켜서, 그 사이를 뚫고 나오기도 어려웠다. 이제 그만 봐야지 하고 돌아서 걷다 보면, 군악대의 음악소리에 홀린 듯 다시 가보게 된다.





 




  드디어 다른 골목을 따라 올라갔는데 특이한 바들이 눈에 띄었다. 아랍 바였다. 그라나다가 이슬람 문화권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인가보다. 어둑하면서 불그레한 조명 아래 긴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색다르긴 한데 들어가 보기에는 너무 낯설고 겁이 나기도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호스텔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도 그 행렬과 다시 맞닥뜨렸다. 겨우 길을 물어서 자정이 다 된 시간에야 호스텔에 도착했다. 

    

  룸메이트가 혼자 있었다. 독일에서 온 재스민. 스물한 살의 대학생인데 3개월 동안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나머지 몇 개월씩은 다른 나라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7개월 했고 현재 있는 마드리드에서는 3개월, 그 후에는 캐나다로 간다고 했다. 이렇게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돈도 벌고 학업도 병행하는, 정말 훌륭한 기회를 누리고 있다. 


  나이를 묻기에 내가 망설이다가 말했다.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잘 대답하지 않아.” 

  “왜?”

  “나이를 말하는 순간, 사람들이 나이로 나를 규정하게 되는 것 같아서.” 

  “난 그러지 않아. 몇 살인데?”

  “53.”

  “뭐라고? 진짜? 우리 엄마랑 동갑이란 말이야? 우리 엄만 정말 늙었는데...”


  그녀는 내가 29살 정도 되었을 거라 짐작했다고 한다. 밤에 전등 빛 아래라 더 그래 보였을 것이다. 그녀는 내 나이를 알고 나서, 나를 더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그라나다 이후의 행선지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말라가와 세비야까지 동선이 일치했다. 


  우린 다음 날 저녁에 아랍 바에 함께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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