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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5. 2021

말라가에서 프리다와 피카소, 해변을 즐기다

 - 말라가, 스페인

     


   터미널에서 나와, 재스민은 호스텔로 가는 시내버스 노선을 검색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호스텔은 식당가 한 복판에 있었다. 아직 체크인 시간이 아니어서 캐리어를 맡기고 해변에 가기로 했다. 태닝은 안 할 건데 해변을 어떻게 즐길까 살짝 고민되기도 했다. 


  호스텔에서 해변으로 가는 길은 널찍했고 양쪽으로 키 큰 열대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서 정말 근사했다. 길 양쪽으로 뻗어있는 종려나무 잎사귀들은 지금까지 내가 본 것들 중에 가장 싱싱하고 풍성했다. 게다가 길 끝까지 바닥이 인조 대리석 같은 것으로 깔려 있어서, 그 긴 길 전체가 정말 고급스러웠다. 아침 일찍 산책하거나 조깅하고 싶은 곳이었다.




     

  해변은 듣던 대로 훌륭했다. 짙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끝없이 늘어선 비치파라솔들이 장관이었다. 밀짚을 엮은 멋진 비치파라솔과 썬배드를 종일 사용하는데 5유로밖에 안 했다. 난 그 파라솔 아래 비치의자를 놓고 호스텔에서 가져온 타월을 깐 다음, 그 위에 드러누웠다. 재스민은 내 비치파라솔 그늘 아래 타월을 깔고 누웠다. 





  그곳에서 우린 서로에게 너무나 필요한 좋은 동행이었다. 외롭지 않고, 머쓱하지도 않고, 바다에 들어가고 싶을 때 짐을 봐주기도 하고. 

  그렇게 오후 내내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책도 읽고 일기도 썼다. 기다렸다가 노을도 보고 싶었지만 저녁 8시나 되어야 해가 질 텐데, 5시 넘어가면서는 쌀쌀해져서 그냥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에 돌아와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우린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해물 파에야에 틴토 베라노를 시켰다. 틴토 베라노는 레드와인에 얼음과 탄산음료를 섞은 상큼한 맛의 와인이다. 

  재스민은 어제 그 일본 걸 때문에 한껏 기대했던 저녁 식사를 망쳤던 얘기를 하면서, 그 생각만 하면 정말 화가 난다고 했다. 나중에 세비야에서도 재스민은 그 일본 걸을 떠올리며 또 분통을 터트렸다. 우리는 말끝마다 ‘리일 리 리일리(really really)’를 연발하던 그녀의 말투를 따라 하며 함께 깔깔 웃어댔다. 우린 틴토 베라노를 두 잔씩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서 많이 웃고 떠들었다. 

  

  11시쯤 깬 재스민이 각자 돌아다니다가 2시쯤 해변에서 만나자고 했다. 함께 여행해도 이런 자유가 필요하다. 분홍색 민소매 면 드레스에 하늘색 카디건을 허리에 두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나서니 스스로 좀 근사하게 느껴진다.  거리 상점에서 큰 숄더백을 사며, 갈만한 곳을 물어보니 피카소 미술관, 대성당, 그리고 성에 가보라고 한다. 


  시간 상 다 들를 수는 없어서 제일 먼저 피카소 미술관에 갔다. 피카소의 주요 작품은 없었지만 피카소가 했던 중요한 말들을 카메라로 찍어왔다.     


   “나는 대상에게서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을 그린다.”      

  

  “예술가들도 의외로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다. 도라를 그릴 때 그랬다. 그녀는 잘 우는 여자였다. 그것이 그녀를 그릴 때 즐겁지만은 않은, 어느 만큼 고통스럽기까지 했던 이유이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우는 여인(Weeping Woman)’의 모델인 도라는, 피카소에 대한 사랑과 그의 다른 여인들 때문에 고통받으며 울부짖곤 했다. 피카소는 그런 도라를 ‘우는 여인'으로 그려냈다. 그는 도라에게서 '우는 여자'를 본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의 도라는 지적이고 아름답고 자신만만한 여성이었지만, 그 시기 피카소에게 주관적으로 닿아오는 도라는 그냥 ‘우는 여자’였던 것이다.  



피카소 '우는 여인', 피카소 - '우는 여인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서 재인용

    

  사람들이 바라보는 대상은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시각과 방식으로 각기 다른 것을 보게 된다.

  바람, 햇빛, 시간, 몸이나 마음의 컨디션 등에 의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그것을 볼 때 혼자였는지, 함께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피곤했는지, 밀도 높은 감각이었는지, 그런 것들이 대상을 인식하는 요소로 크게 작용할 수도 있다.


  내가 본 알람브라 궁전도 그랬다.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과 찬탄을 받는 곳이었지만, 내가 그릴 알람브라 궁전은 아름답고 경이로운 곳이 아니다. 지친 몸으로 역한 살충제 냄새에 시달렸던, 구경이고 뭐고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곳일 뿐이었다.  


  피카소는 또 말한다. 아이들이 엄마를 바라보는 눈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아이에게는 엄마의 어느 한 부분만 확대되어 보이기도 해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고.

   아이의 눈으로 본 엄마를 피카소식으로 그린다면 그 그림이 어떨지 조금은 상상이 된다.


  그의 그림은 난해하다. 그러나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미술사조나 이론보다는, 그가 남긴 이런 말들의 맥락에서 그의 그림을 본다면 그의 그림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피카소의 화집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미술관을 나와 조금 걸었더니 어제 포스터에서 보았던 프리다 칼로 전시관이 보였다. 나는 꽤 오래전에 책과 영화를 통해 그녀를 알고 있었고,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만큼이나 강렬하고 인상적인 그녀의 자화상들을 좋아했다. 


  프리다는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한쪽 발이 휘어지고 다리를 절게 되었다. 나중에는 양쪽 다리 길이도 달라졌는데, 그것을 가리기 위해 그녀는 늘 긴 멕시코 전통 치마를 입고 다녔다고 한다. 그림 속의 그녀는 항상 그 차림이다. 그런데 그녀의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열여덟 살 되던 해에 그녀가 탄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면서 전차의 금속 기둥이 그녀의 몸을 관통했고, 버스가 폭발하면서 그녀의 몸에 수많은 파편들이 박혔다. 이 사고로 그녀는 평생 동안 여러 차례의 대수술을 받으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사고 후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있을 때, 그 지루함과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해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침대 위에 거울을 달아매고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주 혼자여서,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에 나를 그린다.”   

  그녀의 그림이 거의 자화상인 이유이다. 



병원에서 그린 최초의 자화상,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서 재인용.



영화 '프리다'의 한 장면.  '영남 시동인 - Daum 카페'에서 재인용 



  그녀는 멕시코 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지만, 바람둥이였던 리베라와 그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 또한 평생 고통스러웠다.

  “나의 평생의 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의 생애가 어땠는지를 알고 그녀의 그림을 보면, 그 절절함에 가슴이 바늘로 따끔따끔 찔리는 느낌이 든다.    


  이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 모두 그녀를 그린 것이긴 한데, 화풍도 다르고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주요 작품들은 전혀 보이지 않아,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그녀가 그린 작품들이 아니고 세비야의 한 화가가 그녀를 모델로 그린 것들이라고 했다. 

  프리다 자신이 그렸든 누가 그렸든, 프리다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독보적이다. 그녀의 모습에는 그녀가 내뿜는 고통과 긍지와 오만과 슬픔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미술관을 나와, 짐을 챙겨 해변으로 가면서 어제와 다른 길을 걸어 보았다. 항구와 닿아있는 길이었는데 바다를 향해 있는 근사한 식당들이 보였다. 저녁때 노을 보고 오는 길에 들러야지. 재스민이 싫다고 하면 혼자라도 와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여행을 하면서 짧은 호흡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더 많은 여행을 하다 보면 그런 만남들도 타성이 되어 더 이상의 감흥 없이 시큰둥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깊이 들어가는 그런 만남을 바라게 되기도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마음에 담아두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썬배드에 반쯤 누워서 바다처럼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참 평화롭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국적 모를 언어들, 아이들과 어른들의 속살거림도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렇게 누워있는 나를 보며 재스민이 말했다.

  “너 참 행복해 보인다.”


  스페인처럼 여행자들이 많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보려는 욕심이 앞서다 보면 몸이 너무 고달파진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오히려 더 많은 충족감을 느끼게 해 줄 때가 많다. 내일 세비야에 가면 말라가에서처럼 그냥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될 것이다.   

  뒤늦게 재스민과 내가 알게 된 것은 그 해변이 동쪽이라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호스텔로 돌아가 씻고 재스민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해변에 갈 때 보아두었던 그쪽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곳에 앉아 밤바다를 보니 항구 저편에는 등대도 있었다. 불빛이 일렁이는 항구를 보면서 우린 파스타와 틴토 베라노를 즐겼다. 안에 치즈인가 뭔가가 들어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라비올라 파스타는 정말 새로운 맛이었다. 





  근사한 저녁을 먹고 한껏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길 끝까지 걸어가서 그곳의 한 바에 들러 틴토 베라노를 한 잔씩 더했다. 우린 서로의 언어로 간단한 말들을 가르쳐 주었다.


  ‘몇 살이야?, 스물한 살이야, 내 이름은 재스민이야, 만나서 반가워’ 등의 한국말을 재스민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자기 남자 친구에게 건넬 인사를 독일말로 가르쳐주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를 바꿔주고, 그 말로 인사하게 했다. 우린 서로 재미있어하며 깔깔거렸다. 


  그렇게 우리는 2박 3일 동안 함께 말라가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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