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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6. 2021

‘유럽의 끝’, 호카 곶을 만나다.

  - 신트라, 포르투갈


  오늘은 리스본 교외, 기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신트라의 한 성에 간다.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쯤 가면 만나게 될 곳이 유럽의 서쪽 끝, 일명 ‘세상의 끝’, 호카 곶이다. 


  마침 호스텔이 기차역 건물 안에 있어서 기차를 이용하기가 수월하겠지만, 문제는 신트라에서 호카 곶까지 가는 과정이 다소 복잡하다는 것이다. 신트라에서 조금 피곤해지면 내가 호카 곶을 포기해 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호스텔에서 이 두 군데를 묶어 운영하는 패키지가 35유로라 하니, 좋은 동행들도 만날 수 있겠다 싶어 신청했다.     

  

  가이드와 노부부가 그 일행이었고, 다른 호스텔에서 승객 한 명이 더 합류했다. 노부부는 뉴질랜드에서 왔고 아내는 60대 후반 정도, 그리고 남편은  80대 초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아내는 남편보다 훨씬 젊었고 첫인상은 조용해 보였지만, 활력이 넘치고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남편은 나이가 많아서 조금 휘청거리듯 걸었는데, 저러다 넘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저렇게 나이 들어서는 해외여행을 나서는 것이 무리이겠다 싶었다. 


  다른 호스텔에서는 영국인 걸이 합류했다. 뉴질랜드에서 온 여성은 이 영국인 걸을 상대로 끊임없이 얘기를 했다. 나는 다 알아듣기도 힘들고 참견할 만큼의 능력도 흥미도 없어서, 가끔씩 듣는 시늉을 하며 웃음으로 때웠다. 뉴질랜드는 영국 연방이라는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아시아인인 나보다 그 영국인 걸에게 애초에 더 흥미가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트라에 도착해서, 가이드는 우리가 방문하게 될 궁에 관한 설명을 했다. 내가 만난 가이드 중 가장 간단하게 설명했지만, 그래도 설명 없이 그냥 보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었다. 우린 세 군데 옵션 중에서, 내가 제안한 아길레리아 궁을 골랐다. 가이드는 그 자리에 남아있고 우리끼리 그 궁을 탐험하는 것이었다.








  그 궁은 정원이 너무 넓고 그 안에 미로 같은 탐험 로가 있어서, 정원 지도를 보고 찾아가야 했다. 일행 중에 그래도 지도에 제일 밝은 사람이 뉴질랜드 할아버지였다.

  “이래서 가끔은 남자가 있어야 해.”   

  그의 아내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우리도 강하게 동의하며 함께 웃었고, 할아버지는 우리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아 했지만 속으로는 좀 으쓱했을 것이다. 


  한참을 헤매다가 우리처럼 헤매고 있는 다른 일행들과 마주치면, 서로 웃음을 터뜨리는 재미도 쏠쏠했다. 드디어 목표로 했던 건물을 찾아 들어갔는데, 위층에서 바라본 전경이 놀라웠다. 멀리 산등성이에 커다란 암벽들과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옵션 중 하나였던, 디즈니가 본떴다는 페나 성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연푸른 산림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2시간에 걸친 탐험이 끝나고 우린 호카곶을 향해 떠났다. 한참을 졸고 났더니 내릴 때가 되었다. 차에서 내린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잊을 수가 없었다. 

  파랗다는 말 이외에 그 바다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눈앞의 광대한 바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바다를 향해 펼쳐진 노란 꽃 언덕과 순색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다색의 조화에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일명 ‘세상의 끝, The end of the world’라고도 하는 호카곶의 절경이었다. 








  그곳이 유럽의 서쪽 끝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자면 그것이 나를 더 설레게 했어야 하겠지만, 정작 내 가슴을 뛰게 한 것은 서늘하도록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이었다. 

  어떻게 바다는 그 빛깔이 가는 곳마다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마치 똑같은 바다를 보고서도, 그린 사람에 따라 표현하는 바다 빛깔이 제각각인 것처럼.


  거센 바람을 맞으며 우린 기념사진도 찍었다. 조금 더 가까운 사람들과 그곳에 함께 갔더라면, 그 감동을 보다 격렬하게 나누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곳에서 리스본까지는 쭉 해안도로였다. 중간에 한 해변에 들렀다. 모래사장을 걸어가다 뒤돌아보니, 뉴질랜드 할아버지가 넘어졌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아내는 할아버지를 뒤에 두고, 우리랑 함께 앞서 걷고 있었다. 

  나이 차가 나는 부부의 조금은 불편한 모습이었다. 둘 다 똑같이 나이가 들었다면 서로 보살피며 함께 천천히 움직일 텐데, 젊은 아내는 그보다 젊은 우리들과 즐기는 데 신이 나서, 할아버지가 돌아봐지지 않았던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마크롱은 39세이고, 그의 아내는 61세라고 한다. 그녀는 아직 몸매도 훌륭한 편이고, 나이는 들었으나 여전히 뛰어난 지적 면모를 갖추고 있다. 마크롱이 60세가 되면 그녀는 82세다. 

  마크롱은 그때가 되어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기꺼이 그녀의 휠체어를 밀면서도 행복해할 것 같다. 


  신트라 패키지여행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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