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ie Sep 06. 2021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바닷속 벨렝탑

 - 리스본 교외, 포르투갈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트램을 타보았다. 트램은 티비 광고나 해외여행을 하면서 볼 때마다 참 근사해 보여서 늘 궁금했다. 그런데 실제 타보니 안에서는 그냥 버스를 탄 거나 다름없었다. 영화가 우리에게 심어주는 환상이란 때때로 허무하기 짝이 없다.


  제로니무스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을 때 평이 아주 좋아서 기대는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훌륭할 줄은 몰랐다.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어 있는 이 수도원은 건축의 규모로나 그 대담하면서도 정교한 아름다움으로나 비할 데가 없다. 야자수처럼 생긴 기둥과 천장의 문양 또한 매우 독특하고 우아하다. 


  1502년 마누엘 1세가 그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짓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1672년에야 완공되었으니 장장 170년에 걸친 대 건축이다. 옆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 길이만도 100미터가 넘어 보인다. 그냥 수도원일 거라고 지나쳐 버렸으면 어쩔 뻔했는가. 

  이곳은 말로는 안 되고 사진으로도 안 되니,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다음으로 엄청난 곳이었다.   




   









  꽉 찬 마음으로 수도원을 나서서 벨랭탑을 향해 걸었다. 벨랭탑은 일부가 물속에 솟아있는 듯. 혹은 바다 위에 떠있는 듯이 보였다. 독특한 형태의 회색 탑 위로 진회색 구름들이 내려앉아 신비롭기까지 했다. 

  벨랭탑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아름답고 시원했다. 바로 발밑에서 바닷물이 출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역시 마누엘 1세가 지은 이 탑은 원래 외국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고 통관 절차를 진행하던 곳이었는데 후에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에는 정치범과 독립 운동가들을 지하에 가두어 두는 물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벨랭탑과 제로니모 수도원 사이의 길은 바다와 평행해 있어서 참 좋았다. 그 길옆으로는 바다와 이어지듯 또 다른 물길이 있었고, 그 사이에 있는 레스토랑들은 마치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래는 돌아가는 길에 그 유명하다는 에그 타르트를 사 먹으려고 했는데, 그냥 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쉬어갈 겸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바다가 내다보이고, 행복하게 걷는 여행객들을 보며,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근사한 식사를 했다. 난 대학생 배낭 여행객은 아니므로 가끔 이 정도 사치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더구나 조식은 호스텔에서 무료였고, 오늘은 무슨 날이라며 가는 곳마다 입장료가 무료라고 하니 이 정도는 써도 된다. 





  사실 오늘 저녁에는 호스텔 근처의 식당에서 격식 있는 저녁을 먹어볼 계획이었으나, 그 어떤 분위기 좋은 식당이 이 바다 전망보다 멋질까 싶었다. 음료 두 잔에 메인 디쉬 합해서 20유로였다. 그러나 정말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는데, 손님이 오렌지를 직접 갈아서 플라스틱 병에 담고, 병 크기에 따라 계산을 하는 곳이 있었다. ‘오홍!’ 나는 500미리짜리 병에 오렌지를 가득 갈아 왔다. 

  호스텔 라운지에서 한국인 대학생 두 명을 만났다. 그들은 큰 냄비에 끓여 온 라면을 내게 권했고, 난 마트에서 사 온 반통짜리 멜론과 딸기, 그리고 어제 사놓은 와인을 터서 함께 나누었다.


  둘 모두 대학 졸업반이고 이미 취직 시험에도 합격을 했지만, 입사를 포기하고 그냥 여행에 나섰다고 했다. 막상 고정된 직장을 갖게 되면 그때는 이런 여행을 엄두도 못 낼 것이라는 생각에 부모님을 설득했고, 부모님도 걱정은 되지만 허락하셨다고 했다. 

  얼마나 용감하고 똘똘한 젊은이들인가. 그들은 그들의 이 선택이 평생에 가장 잘한 일중의 하나가 되리라는 것을 지금은 잘 모를 것이다. 


  우린 서로의 여행을 지지하고 격려하면서 그렇게 한국인들끼리의 회포를 풀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중 수상쩍은 느낌이 들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