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ie Sep 07. 2021

포르투, 포르투!

 - 포르투의 아름다운 밤



  키야가 꿈꾸는듯한 표정으로 가고 싶다고 했던 포르투,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몹시 궁금했다. 리스본에서 3시간 30분 거리인 포르투에는 오후 2시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호스텔까지의 택시비를 아껴보겠다고, 알량한 맵핑 실력으로 구글 맵을 검색했다. 


  도보로 12분이라고 해서 캐리어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걷다 보니 어쩐지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랬다. 사람들은 무척 친절하게 도와주려고 애썼지만, 그들도 그곳을 잘 알지는 못했다. 결국 택시를 탔는데 택시비는 4유로였다.


  호스텔에서 체크인하면서 여행안내 브로셔를 보니까, 무료 워킹 투어가 있었다. 3시 30분부터라고 해서, 서둘러 짐을 풀고 옷만 갈아입고 나왔다. 호스텔이 거의 호텔 수준이다. 너무 깨끗한 데다 내 룸엔 6개의 이층 침대가 있는데, 모두 비어있고 나 혼자다. 


  포르투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 워킹 투어로 어느 정도 가닥을 잡는 게 좋을 것 같았고, 오후 시간을 애매하게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가이드 투어가 항상 그렇듯이, 너무 많은 설명이 꼭 내 시각의 즐거움을 빼앗고 지루함을 안겨 주었다. 게다가 말이 무료 투어지 약간의 팁을 주어야 하는데, 난 우물거리다 10유로나 되는 팁을 주어버렸다. 도시의 나머지 반쪽은 내일 아침 투어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투어에서 돌아오는 길에, 언덕 아래로 가닿는 시선을 따라가니, 고성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내리막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이 도시의 길과 풍경은 놀랍도록 스펙터클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은, 나 스스로의 발견이라 더욱 신기했는데, 다가갈수록 무척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때마침 이 멋진 곳을 배경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고풍스러운 건물을 향해 굴곡 깊은 길을 지나 올라간 그곳에서, 포르투의 전경과 강변 풍경을 함께 조망할 수 있었다. 내친김에 조금 더 기다렸다가 야경까지 볼 생각이었다. 











포르투 항 야경을 내려다보며 


  그곳에서 내게 한자를 물어보며 접근한 한 남자가 분위기를 망치지만 않았더라면. 리스본에서도 티셔츠 디자이너를 가장한 남자가 나를 유인하려 했던 불쾌한 기억이 있었던지라,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더니 그는 바로 자리를 떴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잠시 헤매다 안 되겠다 싶어 저만치 서있는 경찰에게 길을 물었다. 마침내 호스텔을 찾았는데 호스텔을 지나서 50미터 정도 앞, 골목 끝에 강과 불빛이 보였다. 집도 찾았겠다, 내친김에 강 구경이나 하고 가자 싶어 내려갔다.


  “와! 와! 와!”


   터져 나오는 탄성을 막을 수가 없었다. 강을 따라 불야성처럼 늘어선 노천 식당들이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고, 강변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강 건너 길가로도 상점의 불빛들이 길게 뻗어있었다. 무엇보다도, 식당가 끝에는 강을 높이 가로지르는 아치형 난간의 철교가 황금빛 조명을 내뿜으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골목길을 내려왔다 마주친 그 놀라운 풍경에 넋을 놓고 그 길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갔다. 길 끝에서 시작되는 황금빛 다리를 조금 건너보는데, 바깥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다리 안쪽은 어둑해서 조금 무서워졌다. 그래서 금방 다시 내려왔다.    

    

  노천 식당과 강 사이로 뻗어있는 길은 폭이 꽤 넓었는데, 다리 바로 아래쪽 도로에서 십여 명의 여성들이 추임새를 넣어가며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 삼십 대 중후반쯤 되어 보였다. 바로 옆 식당에서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고, 그들은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직장 일과 가사를 돌보며 살아왔을 그들은 모처럼의 여행지에서, 그동안 눌러두었던 흥을 발산시키는 모양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금발에 작은 몸집의 한 여성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파트너를 리드하면서 혹은 혼자서 춤을 추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한쪽에 서서 흥얼거리며 발만 까딱거리고 있던 나도, 그들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난 그녀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며 함께 추었다. 춤을 추는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웠다. 

     

  그렇게 흥겨운 춤마당을 끝내고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이번엔 거리의 악사들 옆에 한 명의 중년 여성이 서서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가서 말을 걸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즐겨 들었던, 지금도 좋아하는 ‘호텔 캘리포니아’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므로. 


  우리가 한참 얘기와 음악을 즐기고 있을 때, 좀 전의 그 멋진 댄서가 거기 와서 잠시 서있더니, 느린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른 클래식 모던 댄스였다. 난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늘 저런 춤을 추고 싶었다. 무작정 흔들어대는 춤이 아닌, 자신의 영혼까지도 섬세하게 몸으로 표현해 내는. 

  조금 더 젊어서부터 춤을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노래와 춤이 끝나자 열띤 박수가 쏟아졌고, 그 갈채에 부응이라도 하듯 그녀는 한곡을 더 추었다. 황홀한 시간이었다. 난 춤을 끝낸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러시아에서 왔다고 했다. 내일도 여기에 올 거냐고 물었더니 내일 떠난다고 했다. 


  아! 뜻하지 않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마음 가득 감동의 물결이 차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럽의 끝’, 호카 곶을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