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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Sep 07. 2021

신기방기한 펍 크롤(Pub Crawl)

- 포르투

   


   새벽에 눈이 떠졌다가 다시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8시 30분이었다. 느리게 샤워하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가, 내가 식당에 제일 늦게까지 남게 되었다. 한 남자가 대각선으로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스텝인가 생각하다, 아닌가 싶어서 말을 걸었다.

 

   독일 청년이었다. 이름이 슈링커. 지난밤 ‘Forro Porto’인가 하는 춤 배우는 곳에서, 새벽까지 춤추다 왔다고 했다. 재미있었다고, 한번 가보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좋은 데 있으면 함께 돌아다니자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페이스 북 친구 추가를 했다.


  오후가 되어 그에게 페메를 보냈더니 답이 왔다. 오늘 펍 크롤( 대여섯 개의 펍을 옮겨 다니며 마시기), 그리고 내일은 ‘와이너리 투어’를 신청했다고 관심 있느냐고 물어왔다. 두 가지 모두 흥미로웠다. 모두 호스텔 리셉션에서 신청할 수 있는 이벤트들이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6시쯤 돌아와 리셉션에서 슈링커가 얘기한 두 가지 패키지를 신청하고 잠깐 침대에서 잤다.      


  10시쯤에 라운지로 내려와서 나를 픽업해 줄 가이드를 기다렸다. 

  '자신감을 잃지 말자. 나이에 스스로 위축되지 말고 즐기자'. 


  밤 10시 30분에 가이드가 와서 함께 출발했다. 첫 번째 펍에 갔더니 거기에 슈링커가 있었다. 난 그가 제안만 해놓고 자기는 참여하지 않나 보다 했는데 친구들과 함께 바로 이곳으로 왔나 보다. 

  그곳을 나와 다른 일행을 기다리느라, 몇 명이서 30분을 거리에 서 있었다. 슈링커는 작년에도 이곳 포르투에 와본 적이 있다고 했고, 얘기 중에 가이드도 그를 기억했다.



펍 크롤 멤버들을 기다리며


  모두 두 번째 펍으로 이동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은 바로 다음 펍에서 만나기로 한 것 같았다. 음료 한 잔을 마시는데 분위기는 조금 어색했다. 오래지 않아 다른 펍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몇몇은 이 이벤트가 기대와 달랐던지 “뭐 하자는 거야, 이거?”라고 불평하며 자리를 떴다.



 


  또 두어 명의 새로운 멤버가 합류하기도 했다. 세 번째 펍부터는 펍의 개념이 아니라 그냥 클럽이었다. 춤을 좋아하는 나는 그냥 앉아서 얘기만 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았다. 두어 개의 펍을 더 거치면서, 나는 포르투갈과 프랑스 국적 두 개를 갖고 있다는 양복 차림의 남자와 춤을 추게 되었다. 





  이동 중에 합류한 약간 느끼한 스타일의 남자였다. 그는 내게 살사인지 줌바인지 이름 모를 춤을 가르쳐 주었고 나중엔 더 과감한 춤으로 발전했다. 처음엔 스텝이 꼬이고 잘 안되었는데 나중엔 그냥 자연스럽게 잘 되었다. 그는 의외로 매너가 좋았고 우리는 격렬한 댄스에 함께 몰입했다.


  옆을 보니 슈링커도 독일 여자와 꽤 담대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펍에 도착했는데 또 댄스 뮤직에 또 춤을 추어야 한다니. 난 이미 기진해 있었고 더 이상 춤추기도 싫었다. 결국 나와 프랑스 남자. 슈링커와 독일 걸만 남아 있었다. 


  갑자기 이 모든 게 연출된 상황인가 하는 의혹이 밀려왔다. 작년에도 와본 적이 있다고는 하나, 슈링커가 포르투의 이벤트들에 너무 밝은 것 하며, 그가 이 펍 크롤을 제안했던 것, 아까 첫 번째 바에 미리 가있었던 것, 그리고 프랑스 남자가 양복 차림인 데다가 중간에 합류한 것 등등. 

  ‘그런데 왜?’라는 추가 질문 없이, 난 이런 의혹을 기정사실화 해버리며 기분이 묘해져서 아무 말 없이 스르르 빠져나와 버렸다.   


   새벽 3시 30분에 혼자서 그것도 약간 취한 채 걸어서 호스텔로 돌아왔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가당치도 않은 시나리오였다. 이런 의심도 병이다. 

  라오스에서도 그렇게 사람들과 상황을 의심했던 적이 있다. 결국 나 혼자만의 오해와 의심이었던 것을 깨달았던 반복되는 경우였다.  


  나의 그런 오해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를 생각하며 너무 미안하고 낯이 부끄럽다.

여행지에서 사람을 지나치게 믿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나, 근거 없이 과한 경계도 불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너무 멋진 경험이었다. 프랑스 남자와의 춤도 신세계였다. 돌아가면 줌바든 살사든 춤을 배워야지. 그것이 프랑스 남자의 춤일지 러시아 댄서의 춤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엇이든 배우고 싶다. 

  

  정말 다리가 부서지도록 걸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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