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칠라노 비치에서 악기 연주를

- 캐나다, 밴쿠버

by Annie


조식 시간에 퀘벡에서 온 남자들,펠릭스와 티랑 함께 얘기했다. 그들은 록키에서, 밴쿠버 아일랜드를 거쳐 막 밴쿠버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들과 오래도록 식사하며 유쾌하게 긴 얘기를 나누었다. 외모가 곱상한 펠릭스는 교사였고 티는 엔지니어였다.

펠릭스는 내성적인 편이었지만, 막상 얘기를 시작하자 얘기를 곧잘 했고, 티는 거침없이 명랑한 성격이었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는 주로 이렇게 한 테이블에 앉게 된 무작위의 여행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누곤 한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내가 묵고 있던 호스텔뿐 만 아니라 거의 모든 호스텔의 예약이 다 차 버려서, 난 시내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UBC(University British Columbia) 안에 있는 컨벤션용 스튜디오에서 15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묵어야 한다. 호스텔 가격의 3배 정도다. 그러나 준 호텔이어서 깨끗하고, 혼자 잘 수 있어서 지금쯤은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5일 동안은 미리엄과 함께 하느라, 나머지 4일은 밴쿠버의 호스텔 방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느라, 오늘 처음으로 혼자만의 방을 가져 본다. 체크인 시간이 3시라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이 남아서, 캠퍼스를 돌아보고 지금은 학생 회관에서 창밖이 내다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있다. 누가 봐도 학생 차림인 나는 이곳에 그냥 특별할 것 없는 한 점으로 녹아들어 있다.


밴쿠버 하이 호스텔에 머물렀던 4일 동안, 조식 시간에, 그리고 캐필라노 숲 투어를 하며 많은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들과 얘기하면서 난 내가 어려서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교직을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래서 책을 쓸 거라고, 지금은 올해 했던 여행들을 기록하면서 연습 중이라고. 어쩌면 그만 둔지 오래된 사진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얘기들을 되풀이하면서, 내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파블로가 얘기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할 거라는, 그 ‘언젠가는’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꿈을 품었으면 지금 당장 해야 되는 것이다. 여행이 끝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여행 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써야 하고, 사진도 찍고 그래야 한다.

난 은퇴를 한 것이 아니라 직업을 바꾼 것이다. 분명히 해두자.


키아에게서 카톡을 받았다. 독일에서 다시 결혼을 위한 비자 연장이 거부되고, 다시 많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이를 통해서 한스와 내적으로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한스는 캠핑카를 타고 키아는 자전거를 타고, 서로 만나기로 한 지점까지 로드 트립을 하고 있다니, 그들이 부럽다.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 안에서 발견하고, 또 개척할 수 있는 자신들의 미래를 함께 이루어 가고 있는 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체크인 후 깨끗한 침대에서 한숨 자고 6시쯤 선셋을 보러 해변으로 갔다. 걸어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해서, 돌아올 땐 어두울 텐데 사람이 너무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계단들 끝에서 마주한 해변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독특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모래사장 곳곳에 버려진 듯 놓인 커다란 통나무들이 이곳 특유의 소품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의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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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의 통나무에 앉아 한참 바다를 보고 있는데, 이곳에는 훌러덩 다 벗고 다니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젊은 남자들보다는 중년이 지난 남자들이 많이 벗고 다녀서 영화 속 같은 풍경은 아니었다.

여자들도 더러 벗고 다녔지만 역시 아름다운 여성은 보지 못했다. 그냥 그들도 풍경이려니 할 뿐이다.


한쪽에서 계속 연주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몇몇 사람들이 통나무 위에 빙 둘러앉아 잼배와 간단한 악기들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또 몇몇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멀리서 볼 게 아니라 가까이 가야지. 내친김에 난 바로 앞 통나무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연주를 하고 있던 흑인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나를 가리키며 ‘그거 저기 걸에게 줘’하는 것이다.


그러자 그 남자가 쇠로 된 조그만 악기를 내게 건넸다. 난 연주하는 법을 몰라 그냥 땡땡 쳐봤는데, 그 흑인 남자가 자기 옆으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계속 내게 리듬을 가르쳐 주었다. 난 악기 공포증이 있는데..

그가 가르쳐 주는 잔가락을 아무리 해도 따라 해보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아주 단순한 가락을 가르쳐주면서 내게 리드하라고 했다.

“연주할 때는 생각하지 마. 그냥 음을 느껴.”

난 가락을 타며 연주를 했고, 멤버들은 몹시 만족해했다.


춤추는 여자들 중 한 명은 히피처럼 보였고, 다른 한 명은 너무 취해 있어서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 또 다른 여자 한 명은 훌륭한 댄서는 아니었지만, 내내 춤을 즐기고 있었다.

바이크 라이더들이 입는 것처럼 딱 달라붙은 옷을 입은 마르고 피부가 검은 남자는 이상한 선글라스까지 끼고서, 역시 이 여자들과 춤을 추고 있었다. 잼배 연주자는 4명이었고 나중에 한 명이 더 합류했다. 일정한 그룹은 아니고 각자 해변에 왔다가 나처럼 즉흥적으로 합류한 것 같았다.


두 명의 여자와 옆에 앉은 흑인 남자는 계속 담배를 피웠는데, 내게도 피우겠냐고 해서 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냄새가 이상하고 강해서 혹시 담배가 아닌 다른 거냐고 물었더니, ‘당연하지’ 하면서 마리화나라고 했다.

“오 마이 갓!”

그는 계속 마리화나를 피워댔고, 나는 그 연기를 날려 보내느라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는 그것을 재미있어했다. 그는 맥주도 권하고 물도 권했지만 난 계속 사양했다. 그 안에 뭐가 섞일지 어떻게 알겠는가?


난 그렇게 연주도 하고 춤도 추면서 함께 어울려 히피 타임을 즐겼다. 정작 보려 했던 노을은 보지도 못한 채. 마침내 내가 혼자 바다를 즐기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는 몹시 아쉬워하며 어디 앉아 있을 거냐고 자기가 그리로 가겠다고 했다. 내일 스탠리 파크에서 공연이 있는데 자기가 거기서 연주한다고 초대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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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혼자가 되었다. 노을이 지나간 바다는 옅은 푸른빛으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한 채 평화로웠다. 자리에 앉은 지 채 몇 분도 안 되어 경찰이 해변을 닫을 시간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곧 그 흑인 남자가 와서 내 옆에 앉았다.

그때부터는 그가 거북스러워졌다. 함께 저녁도 먹고 돌아다니자는 둥, 어디에 묵고 있냐는 둥의 반갑지 않은 질문들을 했다. 내일 다운타운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했더니 자기가 차로 픽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난 그냥 나 혼자 갈 수 있다고 겨우겨우 그를 밀어냈다.

난 그냥 그 신기한 해변에서 연주하며 즐거웠던 기억만 갖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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