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록키산맥
밴프에 도착해 인공호수인 미아 왕 카 호수에 갔으나 별로 볼 것도 없었고, 나도 경호도 멍해서 잠시 머물다가 시내로 돌아왔다.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을 찾아 내일 재스퍼로 갈 버스표를 예매했다.
경호는 호스텔에서 이 터미널까지 찾아가는 길을 차로 확인시켜주며, 찾아갈 수 있겠느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 여행하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도 했다. 그리고 나나이모에 가면 자기가 아는 사람이 전에 민박을 운영했었는데 아직도 하고 있을 거라며, 혹시 숙소 예약이 안 되는 경우 연락해서 도움을 청하라고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었다.
마치 아이 여행 떠나보내듯이 하는 그를 보면서 이것이 그의 천성인지, 그냥 염려하는 듯한 제스처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난 내가 알아서 호스텔 체크인할 때까지 기다릴 테니, 지금 가라고 했다. 어제 안아보자고 징징거릴 때, 내일 해주겠다고 했던 참이라 헤어질 때 그는 당당하게 팔을 벌렸고, 나는 ‘그래’ 하면서 함께 허그했다.
그가 ‘이마에다 뽀뽀 한번 만’ 그러자 나는 ‘어휴’ 하면서 이마를 대주었다. 더 나갈까 봐 얼른 한 발 물러서서 ‘잘 가’하고 캐리어를 끌었다. 서로 손 흔들며 인사하고 나서 내가 호스텔 앞 벤치에 앉아 있으니까, 어느새 다가와서 그런다.
“입에다 뽀뽀 한 번만 하자”
“됐거든, 빨리 가”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그는 바로 꽁지를 내리고 돌아섰다.
막상 그가 떠나고 나니 뭘 할지 잠시 막막해졌다. 결국 설파산 곤돌라를 타기로 했다. 아직 2시밖에 안 되었으니 뭐라도 해야 했다. 버스를 타고 설파산에 도착했더니 매표소의 줄이 아주 길다. 경호 말로는 30달러 정도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편도였고 왕복은 63달러였다.
너무 비싸서 잠시 망설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표를 산후에도 곤돌라를 타기까지는 대기 시간이 2시간이었다. 케이블카를 타본 것이 처음도 아니라 그것이 특별하리라고 기대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케이블 카는 경사로 치면 거의 바이킹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엄청나서 상당히 스릴 있었다. 도착해보니 63달러라는 요금에 비해 허망할 정도였지만, 20분 정도 걸어서 정상까지 걸어가 보니 그 구간은 나름 괜찮았다. 여전히 너무 비싼 가격이기는 했다.
호스텔에 체크인하고 룸에 들어갔더니 모처럼 나이가 지긋한, 지적인 분위기의 여성이 있어서 인사 나누었다. 말레이시아 근처 어디에서 왔다는데 처음 듣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브루나이였던 것 같다. 지금은 퇴직했지만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고, 컨퍼런스 차 한국에도 왔었다고 했다. 영어, 중국어, 그리고 모국어까지 3개 국어를 한다고 했다.
샤워하고 호스텔 내에 있는 세탁실에서 세탁하고 건조하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려서 거의 새벽 1시에야 잘 수 있었다.
10시쯤 체크아웃하고 짐은 호스텔에 맡긴 뒤에, 몇 가지 필요한 것만 숄더백에 담고 나섰다. 어제 설파산 다녀오는 길에 봐 두었던 공원을 향해 걸었다. 한시 반까지 3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야 한다.
풍경이 멋진 곳에서 큰 타월을 깔고 누워 책도 읽으며 편안하게 쉬어야지. 그런데 실제 걸어가 보니 그곳은 공원이 아니라, 한 호텔의 정원이었다. 어쩌나? 맞은편에 YMCA 호텔이 있고, 주차장 옆에 좁고 긴 풀밭이 있었다. 그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타월을 깔고 가방에 담아온 바나나와 요구르트, 쿠키 등을 브런치 삼아 먹으며 여행기를 썼다. 그래. 이렇게 강가에 앉아 훌륭한 경치를 보며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그러자. 강 양쪽으로 작은 길이 나있는데, 간간히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딜 가는 걸까? 저리로 가면 뭐 볼 만한 게 있는 걸까? 궁금해하며 한 시간 정도 그러고 있는데 화장실을 가야 했다. YMCA 호텔밖에는 답이 없었다. 최대한 당당하게 손님인 듯 들어가서 볼 일을 보고, 자연스레 문을 나섰다. 좀 전의 그 자리로 돌아갈까 하다가 강을 따라 난 그 길이 궁금해졌다.
좋은 산책로였다. 갈수록 풍경이 좋아지는데 알고 보니 그곳이 보우 강(Bow River) 폭포로 가는 길이었다. 마릴린 먼로가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을 찍었다는 그 폭포였다. 셀카를 찍다가 나중에 한 관광객의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그녀는 배경으로 찍은 산 중턱의 호텔을 가리키며, 유명한 호텔인데 정말 아름답다고, 꼭 가보라고 했다. 폭포도 계속 가보고 싶었지만 그 호텔도 궁금했다.
시간이 빠듯했다. 결국 호텔을 향해, 구불구불 산을 휘감아 도는 차도를 따라 올라갔다. 힘겹게 올라가 호텔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넓고 아름다운 자연의 뷰를 조망할 수 있다 해도, 이 록키산 근처의 멋진 자연경관에 비하면 호텔은 그저 호텔일 뿐이었다.
별 감흥 없이 호텔을 내려와 이번엔 강 건너편으로 다리를 건넜다. 다리 앞에서 바라본 강의 풍경은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그 강을 따라 걷다 다리를 건너니, 어느덧 다운타운에 접어들었고, 산책길이 너무 짧게 느껴질 만큼 아쉬웠다. 아무 정보도 없이 혼자서 너무 잘 해낸 내가 스스로 기특했다.
“너 떠나고 꽁지 빠진 새 같은 느낌이야. 물론 잠시겠지만.”
어제 경호가 떠난 직후에 이런 문자를 보냈었다. 물론 반반의 이유에서였다.
실제 무력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내가 그를 이용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감과 바람을 지켜주어야 한다. 서로 씁쓸한 뒷맛을 남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 또한 도움이 필요했던 나를, 경호가 하룻밤 어떻게 해보고 싶은 욕심으로만 대한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처럼. 오늘은 그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다. 네가 도와준 그 곤경에 처했던 여자가 꿋꿋하게 잘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버스 탈시간이 되었을 무렵, 터미널에는 잘 찾아갔느냐고 경호가 전화를 했다. 잘 찾아왔다고, 이제 전화 그만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이렇게 짧고 깔끔한 기억으로만 남기는 것이 좋다. 그도 여행길에 만났던 많은 여행자들처럼, 하루 반 동안 나와 동행했던 여행자들 중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