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퍼에서 만난 미카엘라

- 캐나다, 록키산맥

by Annie


벤프에서 재스퍼로 가는 길은 정말 듣던 대로 장관이었다. 굳이 군데군데 들르지 않아도 버스 안에서 충분히 눈으로도 즐길 수 있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같으면, 그냥 특별할 것 없이 평이한 산과 들, 하늘이 쭉 이어지다 마이산이나 월출산 같은 좀 특이하게 시선을 끄는 산들이 두세 시간에 한 번씩이나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벤프-재스퍼 구간의 도로는 그 마이산이나 월출산 외에 설악산, 지리산 천왕봉, 금강산 등이 빼곡히 줄지어 서있는 것과 같다. 이 훌륭한 경치를 눈앞에 두고서도 졸음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몰려오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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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에 도착해서 호스텔까지는 택시를 타야 하는데 다행히 그곳으로 가는 여행자가 나까지 4명이라 합승해서 갔다. 각각 5유로씩이었다. 호스텔은 산비탈의 외진 곳에 있어서 주변에 마트도 없는데 주방과 식당만 덩그러니 클 뿐 요리할 재료 같은 것도 없었다.


창가에서 휴대폰 충전을 하며 앉아 있는데 택시에 합승했던 걸이 합석했다. 호주에서 온 미카엘라, 상하이에서 4년 간 영어를 가르쳤는데 지금은 밴쿠버에서 유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사무 업무도 함께 보고 있다고 한다.

상하이는 외국인들이 많고, 서로 매우 사교적이며 우호적인 외국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어서,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매우 즐거웠다고 했다. 상하이는 자기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고도 했다.


지금 하는 일은 학부모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무척 크다고 했다. 아시아계 학부모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아이들을 경쟁시키는 성향이 강하고 간섭과 항의도 심하다고 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호주로 돌아가서 정착할 테지만, 이렇게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자유로운 생활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나는 부럽기도 했다. 나도 여행이 좋지만 그녀처럼 그렇게, 자유로운 생활이 좋아서 기약 없이 여행을 하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럴 만큼 여행이 좋아질까?

할 수만 있다면 여행은 늘 더 길어져도 좋다. 그녀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정착하기 전에, 이 여행을 더 오래 했으면 좋겠다.

그녀가 다음 날 멀린 호수 투어에 참가하겠다고 해서 나도 하겠다고 했다.


리셉션에서 판매 중인 파스타 소스와 면을 이용해 저녁을 먹어볼까도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냥 호두로 때웠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얘기하다가 11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을 나오다 보니 낮에 택시로 함께 왔던 머리 긴 남자가 한 구석에 혼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외롭고 심심해 보였다.


28개 배드로 가득한 넓은 도미토리 룸은 불이 꺼진 채 모두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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