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재스퍼에서 밴쿠버로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들쳐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체크아웃 시간까지 천천히 샤워하고 긴 시간 머리와 덜 마른빨래도 말리고 짐도 챙겼다.
커피를 내리고 어제 남은 것들로 아침을 먹었다. 이 모든 것이 좀 더 환하고 아늑한 환경에서 이루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마음에 드는 것은 킹 사이즈 침대뿐이었다.
오늘은 1박 2일 동안 밴쿠버로 가는 비아 레일(Via Rail)을 탈 예정이다. 비아 레일은 유럽의 유레일 같은 것으로 캐나다 전역을 연결하는 여러 개의 노선이 있는데, 그중에 내가 타게 될 노선은 동부의 토론토를 출발해 로키산맥의 절경을 통과해서, 5박 6일 만에 서부의 밴쿠버에 도착하는 캐나디안 라인이다.
숙소를 나서니 밖은 컴컴하게 비가 내리고 있다. 날이 흐려서 코앞의 산도 안 보였다. 2시 반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춥기까지 했다. 패딩 점퍼를 입었어도 비 뿌리는 재스퍼는 여전히 추웠다.
우산을 펴 든 채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까지 갔더니 그래도 캐리어와 큰 가방 두 개를 다 맡아주었다. 대신 기차는 2시간 30분이나 연착해서 5시쯤 출발하게 될 거라고 한다.
아! 차가 연착하면 기차 안에서 볼 수 있다던 아름다운 로키산맥의 풍경을 놓치겠네. 그 풍경을 보려고 티켓 값으로 무려 35만 원이나 썼는데.
내가 그런 아쉬움을 얘기하자, 직원은 오후에는 비가 갠다고 하니 지금처럼 비가 오는 것보다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더 나을 거라고 했다. 해는 10시에나 질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아! 그러나 11시 50분에 밴쿠버 섬으로 출발할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예약해 놓았는데 20달러 또 날렸다. 더 늦은 시간으로 다시 예약할까 하다가 이 기차가 또 연착을 할지도 모르니 그냥 상황 봐서 해야지 싶었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벤프에서 그랬듯이 가까운데 어디라도 산책 삼아 갈 수 있었을 텐데. 바람 불고 춥고 비 뿌리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할 바를 모르고 헤매고 있었다.
재스퍼 시내는 돌아보는데 10분도 안 걸릴 만큼 작고 볼품없는 곳이다. 변변한 카페나 근사한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어딘가 머물 곳도 요기할 곳도 필요해서 피자 하우스에 들어갔다. 그곳도 레스토랑이어서 팁을 주어야 하는 싸지 않은 곳이었다. 혼자서 피자 한 판을 다 먹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웨이트리스에게 말했더니 씬피자를 권했다. 그거라면 실상 먹을 게 별로 없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씬피자 한 판을 다 먹었다. 맛도 좋았다. 시금치, 페타 치즈, 방울토마토와 올리브가 토핑 된 바삭한 피자였다. 팁까지 20달러 50센트. 하긴 한국에서도 피자에 콜라 한 잔 시키면 이 정도 가격은 되니까.
피자를 먹고 있는데 참새 한 마리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와서 바닥을 걸어 다녔다. 사람들은 재미있어하며 먹고 있던 음식 부스러기를 던져 주었지만, 난감해하는 웨이트리스는 쟁반을 이용해 그 새를 밖으로 몰고 나갔다.
밖에서 이 광경을 본 행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밝은 표정으로 웨이트리스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며 지나갔다. 이곳 사람들은 잘 웃고 잘 양보하고 잘 인사한다. 그들이 모두 캐나다인인지 관광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들 여유 있어 보인다. 삶 자체가 여유로운 이들 같다.
아직도 2시간가량 시간이 남았는데 대합실은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가득했다. 역 뒤편에는 구내 카페의 야외 테이블인지, 몇 개의 둥근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그곳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나왔다. 한 젊은 가수가 이 기차에 타기로 했는데 기다림에 지친 승객들을 위해서 노래를 하는 모양이다. 박수 소리도 터져 나오고 한다.
궁금해진 나는 쓰고 있던 수첩을 덮고 대합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한 두곡에 이미 호기심이 충족되었는지 그다지 노래나 가수에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난 맨 앞줄의, 가수 바로 옆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가 노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 얼굴엔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이 지어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도 환하게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정말 부드럽고 달콤했다. 사과 빛 뺨을 가진 수줍고 앳되고 착한 얼굴이었다.
나는 내내 웃음 띤 얼굴로 깜짝 공연을 즐겼고 사진과 동영상도 찍고 박수도 열심히 쳤다. 아마 내가 가장 열띤 관객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두어 명의 걸들이 다가가 그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과 얘기가 끝나자 그가 내게로 왔다. 노래하는 동안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손뼉 쳐주고 해서 고마웠다고.
난 내 폰에 그의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 구글에서 찾아보면 나올 거라고, 있다가 7시쯤에 기차 안에서도 공연을 할 거라고 했다. 선물 같은 만남이었다.
3시간 지연 끝에 드디어 기차에 탔다. 지정된 좌석 없이 그냥 아무 데나 앉으면 되었다. 난 소문으로 들었던 ‘스카이라인’ 칸으로 갔다. 천정까지 투명 창으로 되어 있어서 180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풍경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오래도록 어두워질 때까지 멋진 산속 풍경을 통과했다.
내 뒤의 끝 좌석엔 16살 난 고등학생 닉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엔 중국인 여성 한 명이 와서 앉았다. 나와 그 중국인 여성을 뺀 나머지 모두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쳐나는 칸이었다.
중국인 여성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난 닉 옆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했다. 닉이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한 쪽으로 몸을 웅크리자 난 괜찮다고 함께 찍자고 했다. 친구처럼.
그러자 닉은 내 옆으로 와서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활짝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난 의자에 무릎을 대고 반쯤 서서 등받이 끝에 팔을 댄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때 찍은 사진들을 보냈더니 정우는 내가 수학여행 떠난 십 대처럼 흥분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저쪽 창가 뒷자리엔 아랍계 청년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중국인 여성은 계속 그들이 참 잘생겼다고 했다. 내 옆에 앉은 걸은 닉처럼 온타리오에서부터 이 기차를 타서 4일 동안 기차 안에만 있는 중이었다.
이 칸의 많은 청년들도 상황이 비슷해서 모두들 친구가 되어 있었다. 닉은 옆자리의 인도계 걸들과 함께 어울렸다. 모두들 허물없이 인사하고 웃고 얘기하는 멋진 곳이었다.
중간에 승무원이 올라와서 다른 승객들도 이곳을 경험하고 싶어 하니 두어 시간이라도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가 와주면 고맙겠다고 해서 몇몇 승객들이 일반 칸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몇몇 중년의 일본 여성들이 쭈뼛쭈뼛 올라와서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되는지 내려가 버렸다.
나와 그 중국인 여성도 이 칸에서 배척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도 나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곳의 젊은이들과 어울리기도 했고 둘이서 따로 얘기 나누기도 했다.
지금 52세인 그녀가 젊었을 때, 남편은 그녀에게 그야말로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고 했다. 잘생기고 부자에다 똑똑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그러나 10년 전부터 그가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있어서, 여전히 부부로 남아 있긴 하지만 서로의 생활에 관여하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었다.
친구처럼 오누이처럼 서로 걱정은 해주지만 부부로서의 감정은 이미 막을 내렸다고 했다. 그렇다고 굳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이혼할 생각은 없단다. 그녀는 석사 과정을 마치고 10년 전에 은퇴한 후, 여행을 하면서 블로그에 여행기와 사진들을 올리고 있다 한다.
그녀의 이름은 소피아, 조금은 뻔뻔할 만큼 자신감이 넘치고 자기에게 충실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남편이 사업가인 데다 자기도 오랫동안 일을 했기 때문에 경제력은 충분하다고 했다. 내가 호스텔에 머문다고 하자, 자기는 항상 ‘하이 퀄리티’ 호텔에 머문다고 했다.
자기에겐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우린 숙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 ‘하이 퀄리티’를 함께 외치며 웃곤 했다.
승무원이 올라와 키친과 바는 이제 문을 닫는다고, 알코올을 주문할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인도계 걸들이 함께 어울리는 닉의 몫까지 맥주를 사 왔다. 닉이 맥주를 마시자 나는 미성년자인 그를 놀렸다.
10시가 넘어 어두워지고 불도 꺼지면서 이 칸은 바 분위기로 변했다. 음악 소리가 커지고 이야기 소리도 커지고 서있는 사람도 많아졌다.
소피아는 일찌감치 맨 뒤의 자기 자리에 담요를 덮고 누워서 잤다. 한동안은 이 분위기가 좋았지만, 그렇다고 밤새도록 그곳에 있을 자신은 없어서 12시쯤 그냥 아래로 내려와 잤다.
정말 불편한 잠자리였다. 새우등처럼 몸을 구부리고 자야 했다. 새벽 4시쯤 잠이 깨었는데 창밖을 보니 어슴푸레한 어둠과 밀려오는 밝음 사이에,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기다란 강과 산들이 여전히 새롭고 아름답다.
다시 스카이 라인 칸으로 갔다. 스카이 라인 바로 아래는 스낵 칸이었는데 사람이 없는 그곳에 발 뻗고 앉아 조금 졸다가, 싸가지고 온 빵과 요거트 등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한참 후에 토론토에서 왔다는 중국계 캐나다 걸과 얘기를 시작했다.
사실 그녀는 원래 내 옆자리에서 함께 자던 걸이었는데, 난 그녀를 제대로 보지 않아서 그것을 몰랐고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은 Joy, 미술을 전공했고 지금도 현대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매력적인 얼굴과 몸매, 그리고 날개 뼈 근처에 독특한 문신을 하고 있었다. 우린 예술과 사진에 대해 얘기했고 난 그녀의 사진을 몇 컷 찍었다.
그리고 함께 스카이라인 칸으로 돌아갔는데 그녀가 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자기에게 필름 카메라가 있다며, 원래 좌석에 돌아가서 가져왔는데 콘탁스였다. 지난밤, 왁자하게 그 칸에서 놀았던 젊은이들은 난데없이 나를 모델로 사진을 찍는다고 하자 반색을 하며 바라봤다.
열차가 도착할 무렵, 우린 각자의 객실로 돌아갔다. 그런데 숙소 예약 사이트인 북킹 닷컴으로부터 문자를 하나 받았다. 어제 나나이모의 숙소에 예약이 되어있었는데 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확인해보니 일요일은 기차 안에서 자는 것인데, 난 일요일부터 숙소 예약을 해놓은 것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기차에서 하루 밤을 자니 하루치 숙소 비는 아꼈다고 생각해놓고도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그레이하운드 예약한 것과 합치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식사를 할 수 있는 돈을 날린 셈이다.
못살아! 나의 이 엉성함이란! 조이는 그레이하운드에 기차가 연착했다고 말하면, 환불해줄 수 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밴쿠버에 거의 도착할 무렵, 닉이 내 칸에 와서 작별 인사하러 왔다고 했다. 혼자 여행을 떠난 고등학생이 5일 동안 열차 안에서 친구들을 사귀며 나아가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그는 여기서 연을 맺은 친구들과 나머지 여정을 함께 해나갈 것이다.
35만 원의 기차 티켓이 아깝지 않은 멋진 여행이었다. 이것도 혼자 하는 여행이기에 가능했다.
그레이하운드는 나의 예약 티켓을 보고 다음 차로 티켓을 바꿔주었다. 아하! 이렇게 통하는구나.
여행이 점점 흥미로워진다. 나의 영어는 점점 유창해지고 사람들과의 대화도 다양하고 깊어진다. 나나이모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