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록키의 메디슨 호수와 스피릿 아일랜드
온타리오에서 온 두 명의 캐나다 걸과 영국에서 온 노부부, 그리고 그들의 친구인 듯한 남자 한 명, 나까지 6명이었다. 좀 더 많은 수의 보다 역동적인 동행들을 기대했었지만 이런 종류의 투어에는 늘 여자들과 노인부부가 대다수이기도 하다.
차로 한 시간 반이라고 들었다. 출발해서부터 가이드는 줄곧 듣거나 말거나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쉼 없이 말을 했다.
그 녹음된 듯 단조로우면서도 기나긴 설명이 그저 내게 소음이었고 나중엔 거의 고문에 가까운 지루함과 거부감을 주었다. 많이 먹어서 목까지 음식이 찬 사람에게 계속 먹으라고 음식을 밀어 넣는 것 같은.
중간에 메디슨 호수라는 작은 호수에 들렀다. 주변 산은 작년에 있었던 대화재로 잎은 다 타버리고 까맣게 가지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산의 생태계가 유지되는 데는 이런 화재도 필요하다고 한다. 숲이 너무 울창해지면 그늘이 깊어져서 식물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호수 아래로 내려가 셀카를 찍고 있으니 함께 탔던 영국인 여성이 내게 사진을 찍어줄까 하고 물었다. 나는 호수 앞 바위에 앉아 옆을 향했고, 그녀는 역광의 햇살이 내 머리 위에서 부채 살처럼 펴지는 멋진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에 나타난 호수와 내 모습은 어쩐지 명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메디슨 호수는 여름에만 물이 조금 고여 있다가 가을, 겨울, 봄까지는 물이 다 말라서 호수라는 것을 알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까맣게 타버린 벌거숭이 나무들을 배경으로 더욱 신비로웠던 작고 아름다운 호수였다.
다시 차로 이동해서 드디어 멀린 호수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우리를 그곳 선착장에 내려주고 두시 반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우리가 탈 페리가 도착했고 꽤 많은 사람들이 페리에 올라 빈자리 없이 채워졌다. 털털해 보이는 여자 선장이 자기소개를 했고 이어서 여자 스텝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소개를 시작했다. 그런데 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내 뭔가 설명을 이어간다.
10분 정도 그것을 듣고 앉아 있다가 뭐야, 투어가 이러다 끝나는 거 아냐? 들인 돈이 얼만데? 이 투어를 위해 120달러나 지불했는데.
안 되겠다 싶어, 뒤로 가서 문밖을 내다보니 몇몇 사람들이 밖에 서있었다. 난 반가워서 얼른 밖으로 나갔다.
우와! 거기에 진짜 크루즈가 있었다.
배꼬리가 호수의 물살을 힘차게 가르고 있었고 양 옆으로는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호수 양쪽으로 늘어선 아름다운 산들, 신비로운 호수 물빛, 호수와 맞닿은 하늘빛, 바람, 뽀송한 햇빛... 이거지.
안 나와봤더라면 큰일 날 뻔했네. 저 안에 갇혀서 가이드의 열렬한, 그러나 지루하기 그지없는 설명만 듣다가 투어를 끝낼 뻔하지 않았나? 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셀카도 찍고 또 일행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도 했다.
난 주황색 민소매 쫄티에 검정 레깅스, 검정 카디건을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와 그을린 두 팔을 드러낸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었다.
한참 후 배가 멈춘 곳은 스피릿 아일랜드(Spirit Island)였다. 왜 이름이 스피릿 아일랜드인지 설명을 안 들어서 모르겠지만, 나중에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에서 내려 호수를 바라보니 50미터쯤 되는 곳에 물 위로 작고 둥그런 땅이 솟아 있고 몇 그루 키 큰 나무들이 서있었는데 호수의 풍경과 어우러져서 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니 어쩐지 영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참 묘한 풍경이었다. 영국인 여성은 그곳에서도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가 찍어줄까 물으면 그녀는 아니라고 괜찮다고만 했다.
그곳에서 15분 정도 머물다가 우린 다시 배에 올랐다. 메디슨 호수와, 스피릿 아일랜드, 멀린 호수는 그렇게 참 특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내내 고개를 부딪쳐가며 졸았다. 이틀동안 머물렀던 호스텔에 오늘은 방이 없어서, 25만 원이나 주고 예약한 통킨 인 앞에서 내렸다. 통킨 인은 비싼 가격 대비 썰렁한 곳이었다. 호텔도 아니면서, 조금 무섭기도 하고 아늑하거나 편안한 맛이 없다.
밖으로 난 긴 복도에 방이 하나씩 붙어있어서 왠지 누가 지나가다 침입할 것도 같고, 영화에서 본 사건이 생길 것도 같은 느낌이었다. 창문 밖이 바로 통로라서 커튼도 열어놓을 수 없고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비싼 값은 빼야 하니 수영장엔 가보자.
수영장도 무서웠다. 남 여 탈의실과 샤워실이 문도 없이 바로 수영장과 연결되어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남자 샤워실에서 여자 샤워실로 건너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더구나 수영장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칼을 뽑았으면 고구마라도 깎아야지. 샤워를 시작했는데 수영장에서 남자들 목소리가 들렸다.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으로 나갔을 때 거기엔 남자 두 명이 있었다. 수영장 통유리로 밖이 보이긴 했지만 밖에선 안이 잘 보일까? 조금 겁이 났지만 난 용기를 내서 트랙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수영을 했다.
수영장이 크지 않은 데다 물속에서 눈을 감고 수영을 하다 보니 잘못하면 머리를 찧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수영복을 입은 채 두 명의 남자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인사를 할 수도 없고 몹시 거북했다.
그들은 위층의 온탕에 잠시 머물더니 곧 수영장을 떠났다. 난 세 번 정도 더 트랙을 오가다 그곳을 나왔다.
이제 갈 곳도 없이 긴 저녁을 이 답답한 룸에서 보내야 한다. 이곳은 비슷한 가격이었던 톨레도의 국영 호텔과도, 세비야의 그 호젓한 호텔과도 너무 달랐다. 호사스러움과 자유,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마트에서 사 온 빵과 치즈, 견과 등을 먹고 여행기를 좀 쓰고 그러다 심심하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