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빅토리아
아침에 주방에서 그녀와 다시 마주쳤다. 중국인 청년 하나를 붙들고 앉아 또 혼자서 열심히 얘기 중이었다. 난 마트에서 산 재료들로 아침을 차려 합석했다.
얼핏 들으니 언어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은데, 한국의 한 어리석은 왕이 글자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그가 교만해서였다... 뭐 그런 얘기 같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던데,...” 내가 끼어들었다.
“우린 우리의 언어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그 왕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군주였어요.”
그러자 그녀는 흥분해서 그냥 자신의 견해일 뿐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녀는 쉽게 흥분하는 타입이라서, 난 그녀를 진정시켜야 했다.
난 그저 설명을 하는 것일 뿐, 당신과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당시 일반인들이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했고, 한자는 그들이 배우기에 너무 어려웠다고 얘기했다.
그래도 그녀는 나의 말을 반박이라 여기며, 자기는 자기의 견해를 얘기한 것뿐이라고 흥분했다. 그녀는 세종이 한글을 만든 것이 무슨 국수적인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중국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녀가 한국 역사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 내는 그녀와 다투기 싫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그녀는 내게 와서 미안하다고, 자기는 한국을 정말 좋아하고 한국 사람들도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그녀는 내게 자기 주소도 써주었다. 딱 어젯밤까지의 기억이 훈훈하고 좋았는데. 한때는 지성적이었으나 약간의 정신적 문제를 갖게 되었거나, 아니면 지극히 편협적인 노인이거나 둘 중 하나일 그녀에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가 외국에서는 상당히 왜곡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캐나다 친구도 아버지가 세종대왕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한 뚱뚱하고, 어리석은 데다 게을러빠진 왕이 신하들을 시켜서 문자를 만들게 했다'라고.
내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정정해주어도 그는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너무나 큰 친구였다.
한국보다 훨씬 먼저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해 서구 사회에서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이 상당했던 일본이, 서구사회에 역사를 포함한 학문 분야에서도 이런식으로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 여행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 뒤지지 않는 선진국이 된 한국도 정부 주도로, 왜곡된 채 세계에 퍼져있는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Royal BC Museum에 갔다. 캐나다 원주민에 관한 전시 룸도 있었다.
그곳을 돌아보며 어쩐지 마음속에 분노와 슬픔 같은 것이 올라왔다. 영국이고 캐나다고, 본토에서 평화롭게 잘 살던 원주민들을 그렇게 살아가도록 놔두었어야 했다.
탐험과 발견이라는 명분으로 원주민들이 살던 곳을 빼앗고 그들의 정신과 뿌리를 말살해버렸던 그 제국주의에 대해 강한 반발을 느꼈다.
그들이 살던 땅을 뺏어서 살 거라면, 최소한 그들이 자기네 사회에 편입되고 융화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라도 했어야 했다.
미리엄이 사는 톰슨의 거리에서, 아침인데도 눈빛이 흐리고 취한듯한 사람들을 보았다. 미리엄은 그들이 캐나다 원주민(firstnation)이라고 했다. 그들에 대한 의문이 조금 풀렸다.
캐나다 정부는 과거에 이들에 대한 잔인한 약탈과 학살, 오랜 탄압 등에 대해 반성하고, 그들에게 영토를 빌려 쓰고 있는 대가로,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생계비와 연금, 의료 혜택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억눌려 위축되고 가난하게 살아온 그들은, 정부의 너무 늦은 유화정책에 새로운 삶을 개척할 전환점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술과 마약에 취해 살게 된 것이다.
호스텔에서 만난 그 독일 여성의 세계관과 오늘 방문한 R.B.C 박물관의 전시 관람을 통해, 소수 민족과 약소국에 대한 강한 동질감을 느끼며 마음이 상당히 무거웠다.
박물관을 나와 내일 밴쿠버행 버스 승차 지점을 확인한 후, 엠프레스 호텔 옆 잔디밭에 앉아 안도현 시집을 읽었다. 시들이 참 좋다.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며칠 동안 날이 흐려서 풀밭이 뽀송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