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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으로 철없던

나는 한때 새싹이었고,

by 명랑한 햇빛 Mar 05. 2025

<나는 한때, 지우 그림책>


     

나는 한때 새싹이었고     

껌과 친구가 되기도 했고     

망아지였다가 커튼이기도 했어.     

어느 날은 슬픔이었고어느 때는 고삐였다가     

여행을 떠나 이상한 곳에 도착하기도 했어.     

     



(첫 문장부터 이러긴 싫은데 난 재미있으니까 … 하하)   

   

자, 위의 문장을 보고 무엇이 생각났는지 말하시오! 모르겠어? 그럴 듯한 힌트를 드리겠다! 

사람이라면 모두 있지, 아마도 99%는. 누군가 망쳐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복구 할 수 있다. 색을 입히기도 빼버리기도 한다. 아니면 기계를 갖다 대기도 하고. 여성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말이기도 …. 그리고 요즘 이거 없는 남성은 결혼하기도 힘들걸? ㅎ

이게 참, 무시 못 하는 게 이 스타일 하나가 외모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당연하게도 패션의 완성은 외모지만 그럼에도 많은 역할을 한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땐 학교의 간섭이 심했다. 심지어 우리 언니 세대는 센티를 재기도 했단다. 물론 기준이 초과되면 가위질을 당하기도 했다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제 감이 오는가, 위 작품은 머리카락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책이다. 개인적으로 살아오면서 머리카락으로 장난을 거의 쳐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생소한 이야기다. 책장을 넘기다 “어느 때는 불타고 노을 지고 터지기도 하면서 내가 아니기도 했어“ 라는 문장에선 기억에도 선명한 고딩 시절 학교에서 껌 좀 씹던(침도 좀 뱉고) 친구가 생각이 났다. 방학식 하는 날, 미용실로 달려가 거금을 주고 몇 번의 탈색과 염색 과정을 거쳐 머리카락을 개나리 색으로 하고선 신나게 어른 행세를 하다가 개학 일주일을 남겨두곤 다시 미용실에서 아쉬워하며 원래의 머리카락으로 돌아오던 친구. 어릴 적, 그런 친구 하나씩은 다 있지 않나? 갑자기 궁금하네, 그 친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자녀도 그녀 자신처럼 자유롭게 키웠겠지? 그녀가 어디선가 미용실을 하고 있기를 바란다. 그것도 동네 오래된 미용실에서 함께 오래된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며 미용실 구석에 출석부를 만들어 놓고 동네 여자들 출결을 점검하며 그네 집의 속사정까지 알아 같이 기쁘고 슬프고 하며 살았음 좋겠다. 


점심때가 되면 여름 열무김치 넣고 집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 숟가락 같이 꽂고 먹고 있었으면 좋겠다. 비가 오면 파마 만 동네 손님이 날궂이 전을 부쳐 냄새 맡고 오는 사람들에게 젓가락으로 쫙쫙 찢어 입에 넣어주고 이 친구는 빗소리에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컷트 손님을 받고 있었으면 한다. 학생이 와서 탈색이라도 할라치면 ‘내가 왕년에 말이지 ...’ 하며 염색, 핑클 파마와 롤 스트레이트의 첫 경험 썰과 지금까지의 머리카락 관리 노하우를 전수해주었으면 좋겠다.      




아! 너무 나갔다. 뭔 드라마도 아니고 좀 청승맞다. 그림책 한권이 머리 스타일을 크게 바꾸지 않고 산 나에게까지 전염되어 별 생각을 다 하게 한다. 이렇듯이 우리는 지난날을 얘기하라면 재미있는 입담꾼이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것은 나이 들었다는 반증이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억’으로 쌓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되며 분석되기에 이미 살아 본 시간은 자신의 기억에서 다시 조리되고 리뉴얼되어 새롭게 조명된다. 그러니 얼마나 신박한가 시간이란 녀석은!




책장을 넘길수록 커가는 자신과 그에 맞는 머리스타일, 그리고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과 주변을 확인하며 감정이입이 되어 어느 장에서는 한참을 멍하니 있게 된다. 특히 ‘여행을 떠나 이상한 곳에 도착하기도 했어’ 페이지엔 목욕탕 배수구가 그려져 있다. 머리카락이 빠져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콱! 가슴이 막힌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머리카락이 늙어가니 나도 머리카락을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어느 책에서 ”오직 인간만이 아름답다“라고 했다. 인간의 수많은 오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여전히 인간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소비할 줄 알고 그 시간 안에서 자신과 더불어 타인을 이해하고 성장하려는데 있다.(순전히 내 생각) 시간의 존재방식은 비물질적이고 불가시적이다. 그런 보이지 않고 가늠할 수 없는 시간에 기대어 인간은 문화와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개인의 기억(시간)을 재구성해서 추억으로 간직하고 회상할 수 있다. 또한 지나간 시간 속에 생긴 상처를 새롭게 해석하므로 현재를 좀 더 능동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한때 무엇이었든 그것은 고통으로 남아있지 않고 또 하나의 경험이고 그 경험으로 세계관은 조금 더 넓어졌다.      




머리카락의 일생을 들여다보다가 이 또한 너무 멀리 온 듯하다. 이렇게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처럼 생각이 제 멋대로 춤출 때가 있다. 위 작품의 서사가 갖고 있는 무게감 때문에 이렇게 장황했나 싶다. 우리는 앞으로도 ‘한때’의 시간을 살아가게 된다. 일상의 어느 순간 맞이하게 될 ‘한때’를 응원하고 맹렬하게 환영한다. 나이 먹은 연륜으로 맷집이 생겼으니 오직! 아름다울 ‘한때’를 만들어 갈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눈부실 ‘한때’에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으며 우리는 그렇게 곱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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