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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 공장 나라

가난한 사랑 노래

by 명랑한 햇빛 Mar 12. 2025

낱말공장나라 / 아네스 드 레스트라드 글 / 발레리아 도캄포 그림 / 신윤경 옮김     


가난한 사랑 노래     

나는 책을 읽으며 생긴 부작용이 있다. 이걸 말하면 나의 얇은 인간성이 드러나겠지만 커밍아웃을 하려 한다. 말에 예민하다. 대체로 말로 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어떤 성격인지 각을 잡는다. 이건 순전히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재다. 정말이다. 오해마시라. 사람을 이용하고 판단하려는 게 아니다. 아 ... 진짠데 ...   

  



<낱말공장나라>는 제목과 표지만 보아도 확실한 디스토피아다. 생각해본다. 만약 낱말을 돈을 주고 사는 나라에 산다면 나는 어떤 낱말을 살 것인가. 자연과 날씨, 모양, 맛이나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는 형용사를 사고 싶다. 하지만 돈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다행이도 작품에서는 명사가 제일 비싸고 형용사나 부사 등은 그럭저럭 살 만하다. 물론 세일하는 낱말도 있다. 맞춰 볼 텐가?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당연히 부자는 낱말을 많이 구입했을 테고 낱말이 쓰인 옷으로 치장을 한다. 

그리고 말을 많이 하겠지. 이곳에서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부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생각해보시라, 일방적인 낱말들의 향연은 소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좋은말?이라도 진심이 없고 특히 조사가 빠진 문장은 단절되고 소통이 얼마나 안 되는지 잘 알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대신 옷을 화려한 색으로 입고 표정이나 행동이 풍부하다. 

작품에 나오는 계급은 그렇게 나눠진다. 어두운 색의 옷에 낱말을 잔뜩 넣은 사람(부자)과 빨강과 흰색을 넣은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가난한 사람을 상징). 

아이들은 특히 ‘응’ ‘그래’ 낱말이 떠다니는 스프를 먹는다. 

정말 ‘응’을 먹고 ‘응’으로만 대답한다면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니 언뜻 좋아보였지만 그건 양육이 아니라 사육에 가깝다. 

가끔 바람을 타고 낱말들이 떠다니기도 한다. 그러면 가난한 아이들은 곤충망을 가져와 떠다니는 낱말을 잡아챈다. ‘엄마, 아빠, 언니, 동생, 고마워’ 따위의 낱말들. 




자, 이제 세일하는 낱말들이 어떤 것이 있을지 직관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논리적인’, ‘창의적인 사고 능력’ ‘복화술사’, ‘등나무’ 등이다. (작품에 나오는 낱말)     

주인공 필레아스는 가난한 아이다. 시벨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낱말을 살 수 없다. 고작 바람에 떠다니는 ‘체리’ ‘먼지’ ‘의자’라는 낱말만을 건졌을 뿐이다. 

이런 필레아스에게 경쟁자가 나타났으니 부자집 아들 오스카다.

그는 시벨에게 굵고 우렁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고백한다. 소중한 시벨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우리가 어른이 되면 분명 결혼하게 될 거야.”

오스카는 시벨과 눈을 마주칠 필요도 없고 가슴에 손을 얹거나 팔을 들어 올리거나 하는 액션도 필요 없다. 낱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 할 수 있으니까. 낱말이면 다 되는 세상이니까.   

   



낱말을 돈을 주고 사서 삼키면 소유할 수는 있지만 공유할 수는 없다. 오직 소유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세상이다. 등이 서늘해진다. 평소에 나는 어떤 말을 하며 사는지 돌아본다.

요즘엔 말 잘못하면 소송에 휘말리거나 갇히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비언어적인 표현수단이 꽤 있다. 말로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한다. 


메라비언 법칙이 있다. 심리학자인 메라비언 교수의 저서 ‘침묵의 메시지’에서 주장한 내용으로 상대와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인상을 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화 내용이 7%, 상대방의 목소리는 38%, 상대방의 표정과 태도가 55%, 목소리에서 느끼는 청각과 모습에서 느끼는 시각을 빼면 말의 내용에서 느끼는 것은 겨우 7%에 불과하다는 법칙이다. 


즉, 인간은 타인과 대화를 나눌 때 대화의 내용보다는 그걸 뒷받침하는 시청각적 요소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는 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같은 대화를 하더라도 시청각적 요인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쓸데없어 공중에 떠다니는 낱말(체리, 먼지, 의자)을 사랑하는 시벨에게 정성과 진심을 담아 말하자 시벨은 보답이라도 하듯이 필레아스 볼에 입맞춤을 한다. 

이렇듯 말의 힘은 여기에서 만큼은 힘을 잃어버린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비싼 낱말로 온 몸을 치장하고 세상의 모든 말을 삼켜 말한다 해도 진심이나 사랑이 없다면, 그 고백이 자본에서 나온다면, 교만이나 오만에서 나온다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아! 나 ... 어떡하지? 

말에 예민한 나는 이제 둔감해져야겠다. 

전인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감지하고 진심으로 상대의 눈과 그의 표정을 읽어 내야한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려고 한다. 한 사람을 만나 알고 믿고 사랑하기까지의 과정은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말을 지나치게 아끼는 사람을 보며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는데 

이젠 비언어적인 정보를 모아 살펴야한다. 

어느 시구처럼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 전부 오는 것이므로 

정성과 진심으로 환대해야한다.




더불어 나란 존재도 누군가에게 말뿐 아니라 다른 비언어적인 것들로도 읽혀지길 바란다.

우리 부디 부자의 유혹의 언어에 마음 흔들리지 말고 가난한 사랑의 언어로도 달달한 날을 살아보자. 얼마 전에 하늘로 돌아가신 신경림 시인의 시를 함께 읽고 싶다.         


                      

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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