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여러 조각으로 존재하는
루돌프J에게
그림책 루돌프J를 읽고서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있다. 온통 자신에게만 집중하던 시절, 내 것, 내 아이, 내 가족, 내 집, 내 일의 반반한 길을 지나 아침에 부릅떠지던 용맹과 한 번의 삑사리도 허용하지 않던 일상을 지나, 아는 척, 있는 척, 뭐 좀 가진 척 하며 이제 막 사회 걸음마를 시작한 청년에게 ‘인생 다 거기서 거기지,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어’ 개뿔, 열어보면 공갈빵 같은 뇌를 감추며 용광로 불같은 열정으로 세상을 노려보는 젊은이에게 개 풀 뜯어먹는 소리(힘 빼는)하던 시간도 지나고 말았다. 지나고 말았다.
대략 내 나이를 헤아려보니 손주를 볼 나이가 되었다. 아니, 지났을 수도 있다. 손주를 보는 적령기(?)에 현역처럼 여전히 먹고사는 일에 골몰하는 모양이 늙은 젊은이를 연상한다.
연말도 지나고 신년도 지나고 소한과 대한을 어깨에 메고 겨울을 나고 있는 중늙은이는 전기매트가 어떤 손길보다 보드랍고 따뜻하단 걸 안다. 배신하지 않는 따뜻함에 휩싸여 팔이 닿는 곳에 차와 밍밍한 간식과 읽을 책을 두고 종일 몸을 뒤집고 있다.
언젠가 ‘늙은 말에 대한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는 기억에 의지해 손바닥만 한 볕이 사라져 갈 즈음에 책장을 뒤졌다. 그렇게 찾아낸 <루돌프J>는 홍우원(1605-1687)의「노마설(老馬說)」에서 시작되었다는 안내가 있다. ‘그렇지 늙은 말, 끝까지 천성대로 살았던’ 늙은 말의 교훈을 잡아보고 싶어 다시 작품을 연다.
아련한 저 눈빛을 보라 ..ㅠ살면서 루돌프가 늙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힘차고 명랑한 루돌프만 상상하다가 시그니처 빨간 코의 수명이 다해 산타로부터 권고사직을 받다니. 빨간 코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변명의 여지없이 썰매 끄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루돌프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릴 적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고향 같은 건 잊은 지 오래다. 고향이라 명명한 그곳은 놀림 받아 혼자 누워 있던 기억만 있는 공간이기에 몸도 마음도 추레해진다.
오래된 전등을 가는 것, 고향이란 낯선 곳에서 잠이 들어야 하는 것, 지붕을 고치는 것들은 어설프고 엉성해서 그만두고 싶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일단 살아보기로 한다.
마음과 달리 집보다 더 큰 트리를 만들고 빨간 등을 달고 달고 달고 또 단다. 마음의 허기를 빨간 불빛으로 달래고 싶은 욕망이 내게도 전해지는 순간이다.
며칠 전에 식이섬유 영양제를 주문했다. 아침에 일어나 음양탕 700ml를 마시고 식이섬유 영양제로 입가심을 하고나면 루테인, 알로에, 맥주효모 영양제를 후루룩 마신다. 몸의 변화보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다. 뭐 이런 것들이 쌓여 결국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나 할까. 화장품회사 다니는 아들이 탈모에 좋은 샴푸, 얼굴에 붙이는 팩, 크림 과 앰플, 덤으로 갱년기 영양제를 안겨주었다. 그러면서 본인 동생 것(내 딸)은 피부에 좋은 영양제와 민감성 피부를 위한 기능 화장품을 여러 개 챙겨왔다. 뭔가 차별받는 기분이 들었다. 너희 엄마도 중연여성으로써 기능성 화장품을 써야하는 거라고 확 다 뺏고 싶었지만 우아한 엄마이므로 조신하게 제안했다. 나도 요즘 피부가 별루라고.
루돌프의 처지가 온몸으로 다가오며 공명한다. 커다란 트리가 밝게 빛날수록 더 이상 빛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괜히 나까지 주눅이 들어 짠함과 동시에 어떻게 사나 불안함이 엄습해 올 때 신참 루돌프k가 찾아온다. 자신을 대신해 썰매를 끌 떠오르는 존재, 젊고 튼튼한 발목으로 지구별을 오만칠천 바퀴는 돌 수 있을 것 같은 상냥하고 빨간 코가 인상적인 젊은이. 은퇴한 루돌프J에게서 노하우를 전수 받고 싶어 그의 나무 집을 두드린 것이다.
“루돌프가 된다는 것은 너의 빛을 모두 내어주는 일이야 후회하지 않겠니?”
루돌프J의 물음이 물감처럼 가슴에 스며든다. 산다는 것은 내가 가는 길, 내가 하는 일을 빛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멈춘다. 나의 빛은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 알알이 박혀 빛나고 있다. 역할이 끝난 뒤 남겨지는 ‘존재의 불안’은 ‘쓸모가 없다면 사라지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남기지만 쓸모를 떠나 존재로서 충분한 존재는 루돌프k가 함께 있음으로 앞에 서서 빛을 비추는 역할에서 뒤에서 길을 남겨주는 흔적의 역할로 변형 된 것을 알 수 있다.
루돌프J는 루돌프k를 통해 다른 존재방식으로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은퇴한 루돌프J에게도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일까, 막다른 길에서 다시 보이는 또 다른 길. 늙음은 결핍이 아니라 변형임을 알게 된다. 늙은 말은 더 이상 선두에 서지 않지만 길을 잃지 않는 다는 것을, 존엄은 능력에서 나오지 않고 올바른 방향에서 나오는 것임을 차분하고 따뜻하게 이야기 한다.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적인 자아에 매몰되어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면 한량처럼 시간을 허비하며 지난날에 박아둔 빛을 세어보기도 하고 축적된 시간 속에 이야기적 자기성을 찾아 ‘다른 나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항상 어떤 가능성을 향해 ‘앞서 가는 존재’라고 말했지만 모든 앞서감이 ‘속도’일 필요는 없다는 것도 덧붙였다. 노마설(老馬說)의 노마는 앞서 달리지 않지만 ‘앞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의미의 예견이지 퇴행은 결코 아니다.
이런저런 상념들 눈으로 덮어버리고 겨울잠을 자고 싶다. 그럼에도 여전히.
길고 지루하고 춥고 배고픈 겨울을 지나려는 자, 텅 빈 충만을 즐겨야 한다.
이래도 저래도 운명이고 천성이다.
아무튼! 작품을 몇 번 읽고 끝내 해소하지 못한 질문 하나, 산타는 은퇴 없는 거야? 종신 직업? 장기집권 뭐 이런 건가. (부럽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