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별볼일 없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5분

by 키만큰

아침 6시 30분 기상

6시 50분~7시 50분 자격증 공부

7시 50분~9시 서칭

9시~9시 30분 빨래

10시~10시 30분 이동

10시 30분~12시 30분 애플 매장 방문

12시 30분~1시 식사

1시~2시 이동

......


난 완벽주의자다(이런 걸 완벽주의자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죄송하다. 달리 용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완벽주의자라고 말한 것일 뿐이다). 백도 없고 돈도 없는 와중 허송세월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일을 다니면서는 강하게 뿌리 내렸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 일과를 꼼꼼히 적고 그에 맞춰 행동하려 한다는 점이다. 일과를 지키지 못하면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생기고, 때로는 소중한 하루를 날려버렸다고까지 생각한다. 일과뿐만이 아니다. 물건 하나를 구매할 때도 그리고 있는 계획에 어긋나면 안 되며, 나를 100%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하물며 값이 조금 있는 물건이라면 하나 사는 데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는지.


동시에 난 게으름뱅이이다. 일과를 지키느냐 여부에 그렇게 집착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정작 첫 일과인 기상시간부터 느리게 일어나기 일수이다. 6시 50분에 일어나면, 좀 더 자서 개운하다가 아니라 20분을 왜 못 일어났을까 하는 자책감에 빠진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6시 반보다는 6시 50분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하루 일과표를 보며 옆에 x, 세모 표시가 많다면 다음날에 보완을 해야 할 텐데라는 걱정이 가득하면서도 다음날은 또 다른 부족한 하루가 된다.


물건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이 물건이 지금 꼭 필요함에도, 미래에는 도움이 될지를 쓸데 없이 고민한다. 보다 완벽한 타이밍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려고 한 의도는 좋았지만 이러다 보니 시간만 보내는데, 이는 결국 사는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게으름뱅이가 되었다는 것. 어제도 몇 달간 고민하던 아이패드를 사려고 마음 먹었건만, 결국 다음주로 미루기로 했다. 그 몇 달간 아이패드 가격은 확 올랐고 나는 아이패드가 필요했던 순간에 아이패드를 이용해보지 못했다. 이런 쇼핑의 마지막은 항상 일관된 변명으로 끝난다. "돈만 많았으면 고민 없이 사지."


어제 나는 평소와는 다른 심란함에 빠졌다. 하루 일과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 꼭 구매하겠다고 다짐한 용품들의 구매를 뒤로 미룬 결단력 부족한 모습에 대한 한탄으로 가득했다. 그와중에 이 해결하지 못한 용품들의 구매 시기와 방법에 대한 고민은 또다시 싹을 틔웠고 결국 이는 저녁 일과까지 망쳐놓았다. 이 정도가 되니 왜 '과감하게 행동 하나 하지 못하고, 같은 고민과 자책감만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상 시간이 되었을 때 눈을 뜨자마자 아무런 생각이 들기 전에 먼저 몸을 일으키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텐데. 일정을 못 지켰으면 잠을 조금 줄이고 조금이라도 그 일정을 지키려 한다면 대하는 자세가 다를 텐데. 물건을 살 때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당장의 필요함을 생각해서 과감하게 사 보는 것도 좋을 텐데. 당장의 돈을 놓고 고민하지 말고 내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냥 내가 주는 선물이니 즐겁게 받기만 하면 좋을 텐데. 왜 이런 다른 실천은 하지 못하고 고민에만 빠져 있는지.


이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그렇게 어제 하루를 또 날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이 원인이 된 쓸데 없이 생각 많은 나의 머리를 식히기 위해 목욕탕이라는 작은 휴식을 주었다는 것. 눈만 잠기지 않은 채로 탕에 몸을 담구며 생각에 잠겼다.


'야이 게으른 완벽주의자야.
왜 나가 나한테 주는 작은 선물마저 받기 거부하니.
왜 지나간 시간에만 미련을 가지고 후회하고 있니.'


이런 사람을 위한 약이 혹시 어디에 없을까. 만약 그런 약이 있다면 난 나의 시간과 몸을 바쳐서라도 그 약을 가져와야 할텐데. 그때가 되어서 또 저울만 재다가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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