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에 어둠이 필요할 때

별볼일 없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5분

by 키만큰

얼마전 이사를 했다. 본가에서 회사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출퇴근 시간만 도합 4시간이 넘었었다. 꾹 참고 3년을 다녔지만 최근 들어 힘에 부쳤다. 마침 행복주택 입주에 당첨되어 얼마나 지낼 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지는 차로 간다면 10분이 걸릴 정도로 가깝다. 하지만 주위 교통편은 너무 열악하다. 서울로 나가기 위해서는 광역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를 타기 위해 15분을 넘게 걸어야한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그중 10분 정도를 가로등 하나 없는 도랑과 논밭 사이의 작은 샛길로 걸어야 한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왜인지 모를 꺼리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주말이면 회사차를 몰고 본가로 갔기에 그 길을 걸을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그 길을 걸어 버스를 타고 서울에 나갔다 왔다. 볼일을 마치고 저녁 버스에 올라타 돌아오는 길. 용감한 형사들을 보면서 가다 보니 문득 너무 어두우면 꽤나 무섭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왜 하필 그때 그 범죄 프로그램을 보았을까. 걱정은 틀리지 않았다. 내려서 3분 정도 걷자 왼쪽에 샛길이 빼꼼 나왔다. 마치 악어가 먹이를 어두운 자신의 몸속으로 유혹하기 위해 얼굴만 내밀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남자라 해도 나처럼 비리비리하다면 뭔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들은 순간, 배에서 소리가 났다.


"꼬르르륵"


그 소리에 나의 발걸음은 빠르게 집을 향했다. 처음에는 뒤를 돌아봤지만, 이내 어둠에 익숙해졌다. 다행히도도 가까운 거리에는 작은 불빛들이 있었고, 앞에 보이는 아파트의 불빛들과 바람 소리들이 나를 안도감에 빠지게 해 주었다. 주위는 적당히 깜깜했다. 눈은 어둠에 빠져 편안해졌고, 이내 그 신호는 머리로 전달되어 입으로 다시 배출되었다.


"아, 어두워서 좋네."


눈은 뜬 상태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빛이 군데군데 있긴 했지만 서울의 빛에 비해서는 규모가 매우 작았다.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 내 머리가 빛에서 멀어져 있을 때는 언제였는가. 하루 종일 빛에 익숙해져 있었다. 심지어 야밤이 되어도 빛은 그대로였으니 머리도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낮인 마냥, 내내 깨서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마냥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오늘도 빛들에 사로잡혀 있던 도중, 그 샛길의 적당한 어두움이 머리의 조명을 잠시 꺼준 듯했다. 불을 끈 상태로 생일 케이크의 초를 바라보면 무언가 편안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마치 그런 상태인 듯했다.


검은색, 어둠 하면 우리는 보통 '무섭다'를 떠올린다. 맞는 말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계의 색,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상태의 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편안하다'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둠이 찾아오면 뇌는 평온함을 느껴 숙면에 이른다. 어둠이 없다면 뇌는 내내 깨어있을 것이고 휴식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간혹 잡생각으로 인해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빛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어둠 속에서도 뇌가 반짝반짝 빛나 그 증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뇌가 취할 정도의 아주 진한 어둠 한 잔 아닐까. 뇌의 전등 스위치를 끄고 쉴 시간을 마련해 주는 어둠 한 잔이 가끔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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