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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Jan 04. 2022

햇살만 있으면 돼


햇살만 있으면 된다고,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끄적이듯 적었던 적이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남겨진 기분이 드는 날들이 있고, 나에게도 그런 날들이 있었다.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던 그 시간 중 문득,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한줄기에 눈이갔다. 

가난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풍성해졌다. 이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후엔 온종일 책만 보면서 살면 좋겠다고 했던 아빠는 황반변성에 걸려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나한테 햇빛이 그랬듯 아빠한테는 책이 마지막 기댈 곳이었을 텐데, 앞을 잘 보지 못하게 되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셨으리라. 나도 그랬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사랑이나, 우정 같은 것들이 한순간에 차가워질 때, 나는 많이 두렵고 외로웠다.  


그래서 햇살이었나 보다.

아무리 장마가 오래 지속되어도 맑은 날은 반드시 왔고, 아무리 추운 겨울날도 햇살은 따뜻하다.

그 밝음과 따뜻함에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햇살은 영원히 보장된 나의 기댈 곳이다.



요즘 유난히 햇살이 좋은 날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 집은 햇살 맛집이다. 

나는 마치 태양 전지처럼, 방안 깊숙이 들어와 천천히 움직이는 빛을 종일 따라다닌다.


빛을 받으면 더 반짝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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