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갑자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야?"
아이패드를 보며 같은 발음을 반복하고 있는 백군에게 물었다.
"구례 스테이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려고."
백군은 아이패드에 눈을 고정한 채 퉁명스럽게 답한다.
(우리는 4월에 구례에 내려가서 숙박업을 할 계획을 갖고 있다)
"진짜? 상식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이라도 유명하게 만들려면 다른 걸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아?"
아이패드를 노려보고 있는 백군의 미간에 짜증스러운 주름이 잡힌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나는 갑자기 짜증을 내는 백군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어 머쓱해졌다. 방으로 들어와 내 할 일을 하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아니 맞는 말 했잖아, 영어공부를 하면 구례 스테이가 잘 되기라도 해?' '왜 괜히 예민해서 난리야. 어이가 없네.'
모른 척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샤워를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 사이 아침 준비를 하는지 음식 냄새가 솔 들어온다. '밥 먹으라고 부르면 못 이기는 척하고 밥 먹으면서 풀어야지'생각했는데 막상 밥 먹으라는 말을 곱지 않게 내뱉는 백군한테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 밥 안 먹어!"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알겠어"백군이 답한다.
그렇게 방에 들어와 앉았는데 순간 '이게 뭐 하는 거지' 뭐가 문제든, 누가 잘못했든 아무도 기분 좋을 일이 없는 이 상황을 오래 유지하는 게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철판을 깔고 나가, 밥그릇을 들고 "나도 밥 줘"했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터진다.
"안 먹는다며! 빨리 잘못했다고 해."굳어있던 얼굴을 펴며 백군이 따진다.
"잘못했어. 그럼 이제 네가 잘못한 것도 말해봐."
백군은 당당하게 잘못한 게 없다고 한다. 내가 자기를 무시하고 비난했으니 이번엔 확실히 내가 잘못한 거라고 한다. 나는 절대 무시하고 비난한 적이 없다고 우겼지만, 백군은 의심을 거두지 않고 계속해서 심통이 난 얼굴이다. 사실 나는 어제 백군한테 '영독단'링크를 보내주며 영어공부를 권장했던 사람이다.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 열심히 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조금 이해가 안 된 건 구례 스테이를 잘해보려고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백군한테 문제가 되었던 건, 왜 갑자기 영어공부에 열심이냐고 물은 것이었다. 돈을 벌지도 못 할 일을 왜 하는 거냐며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단다. 맹세컨대 나는 그런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뭔지 순수하게 궁금해져서 물었던 것이다. 이건 명백히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인 백군 잘못이었다.
"근데 난 왜 시비 거는 것처럼 들렸지?"
"네 마음속에 알게 모르게 미안함이 있었나 보네."
"그러네, 네가 진짜로 시비 걸었다고 해도 받지 않았으면 그만인데."
"맞아, 생각해보니까 네가 잘못했지?"
"응."
"근데 표정은 왜 계속 심각해? 갑자기 변경하기 어색해서 그래?"
"응."이라고 작게 말하는 백군을 보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어버렸다.
보통 우리의 맘 상함은 이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누구든 마음에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웃겨주면, 심각하던 상황에 기분 좋은 반전이 생긴다.
나쁜 꿈을 꾸다가 깬 것처럼 금새 평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