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y Jan 13. 2022

디자이너의 쓸모

20년 만에 간신히 찾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중학교 3학년, 나는 어디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공부도 중간쯤, 운동도 적당히, 음악도 그냥저냥,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럭저럭, 있는 듯 없는 듯 큰 말썽도 없이, 특별히 뛰어난 것 없는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공부하러 독서실에 가선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보았고, 수업시간엔 교과서 귀퉁이에 그림 그리고 낙서하기에 열중했다.

중3 말이 되었을 때 당시 고등학교 선생님이던 막내 고모가 디자인과가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추천해 주셔서 별 고민도 없이 디자인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생활도 그다지 뛰어나진 않았다. 다른 과목은 전부 그럭저럭, 디자인과목은 그냥 해도 거의 A를 받았다. 학교에선 주로 엎어져 자고, 담을 넘어 떡볶이를 먹으러 다니고, 학교가 끝나면 미술학원에 갔다. 미술학원에서 4시간씩 그림 그리는 일이 별로 지루하거나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열정도, 욕심도 없이 매일을 살던 나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서울에 있는 국립대 디자인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큰 뜻도 없이 공부가 싫어 선택한 디자인이 20년간 나를 먹여 살렸다.


현재 나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 중이다. 지금은 잠시 방학중이긴 하지만,

경험상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들에 비해 보편적인 '미'에 집착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그게 너무 어려웠다. 첫째, 내가 보편적이지 않았다. 둘째, 집착하기가 싫었다.(는 것은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

나에게 중요한 가치는 '마음에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인데 집착하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은 마음을 괴롭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계속해서 디자이너였던 이유는 이걸로 가장 돈을 잘 벌었기 때문이다.



침대에 물을 쏟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평정심


항상 의문이었다. '디자인이 남들한테 무슨 도움이 돼?'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을 보거나, 무서운 불길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을 구하는 소방관을 보면서 내 직업은 그저 돈벌이에 불과한 것 같았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디자인을 하면서 늘 생각했다.

디자이너는 대부분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해결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클라이언트 한 명 만족시키는 일은 할 수 있지만 그걸론 성에 차지 않았다. 그리하여 먹고살 만 해지면 나는 자꾸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

어쩌면 지금도 그러는 중이고.


그런데 오늘 문득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자연과 같은 선물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마음을 현재로 데려오는 것.

이 발견은 나에게 꽤나 고무적인 것이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내가 계속해서 디자인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되어줄 만큼은 되었다.


이제 나는 나의 클라이언트가 되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주문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공간을 만들어봐.


이 풍경들은 항상 나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미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