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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Jan 14. 2022

부암동, 불편하고 특별한



커피우유 한잔 마셨으면 좋겠는데..., 걸어서 왕복 40분 오르막길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차를 내린다. 걸어서 왕복 40분은 카페가 아닌,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다녀오는 시간이다.


나는 종로 한복판에 있는 부암동 꼭대기에 산다. 연인들이 드라이브하기 좋은 코스로 꼽는다는 북악 스카이웨이와 비슷한 고도에 있다. 우리는 산에 가기 위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멧돼지도 출몰하고 도롱뇽도 보호하고 있는 그 산은 바로 우리 집 옆으로 연결된다. 집 앞엔 할머니가 소일 삼아 유통기한이 긴 제품들만 몇 개 가져다 놓은 작은 가게가 있고, 그 옆에는 스님 한분이 계시는 작은 절이 있다. 그 둘을 제하고는  몇 가구 안 되는 집들과, 그보다 훨씬 많은 나무들이 있다.


"창을 열었을 땐 무조건 초록! 이어야 해."라고 고집하던 나는, 앞마당 뒷마당에 숲이 우거진 이 집에 보자마자 반했다. 마당엔 찔레 장미, 톱풀, 분홍 달맞이, 국화 등이 바통 터치하듯 피고 지고, 모과나무에선 해마다 노란 모과가 잔뜩 열린다. 큰 대문을 열고 잔디밭 가운데로 난 징검다리 돌을 밟고 현관까지 걸으면 큰 부자가 된 기분이다. 집에 들어오기 위해선 문을 네 번이나 지나야 하는데, 그렇게 거창하게 들어선 집은 달랑 부엌을 겸한 거실과 방 하나가 전부다. 우리는 충분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집을 잘 선택하지 않는다.


욕실에서 보이는 오늘의 뒷마당


우리 집에 오는 누구든 "겨울에 어떻게 다녀요?"라고 묻는다. 심지어 "택배는 와요?" "여기도 배달이 돼요?" "인터넷은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옆집을 내놨을 땐 집을 보러 오던 사람이 이런 데서 못살겠다며 중간에 돌아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 집엔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특별한 혜택들이 있다. 이곳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사이에서 우리 삶은 더 풍부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집을 선택한 것에 200% 만족한다.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별한 달콤함을 충분히 맛본 우리는 다시 한번 또 다른 특별함을 만나보려고 한다. 그곳엔 제대로 된 병원도, 좋아하는 편집샵도, 서점도 없지만, 4월 5일 식목일 우리는 구례읍으로 간다.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라며, 불편한 곳이 아닌 특별한 곳으로의 모험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끝이 정해진  집의 하루하루는 금같이 귀하기도 하다. 매일을 마음에 꾹꾹 새기며 오늘도 좋은하루를 산다.


'우린 사람들을 초대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며 친근한 시간을 보냅니다.'






특별하다는 단어는 사전에 '보통과 구별되게 다름'이라고 설명이 됩니다. 다르다는 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죠. 그런데 저는 이 '다름'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보통'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특별하다는 단어는 늘 좋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처음 반지하에 방을 얻어 독립했을 때, 창문을 열면 눈높이 조금 아래로 땅이 보이고 좁은 공간을 두고 앞은 담장으로 막혀 있었어요. 그리고 그 좁은 공간에 나무가 한그루 있었어요. 그래서 그 집도 저에겐 특별했습니다. 그 나무가 마치 제제의 라임 오렌지 나무 같았어요. 저에게 특별하다는 단어는 이렇게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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