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제 우울해서 화분을 하나 샀어."
"오! 잘했네. 무슨 화분 샀어?"
이 대화에서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F(feeling) 감정 유형일지도 모르겠다.
한참 MBTI가 유행일 때 나를 비롯한 3명은 한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일행 중 한 명이 나의 MBTI 유형을 물었고,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위에 대화는 "나 어제 우울해서 화분 샀어."라고 친구가 말한다면 뭐라고 답할 것 같냐는 질문에 나의 답이었다. 우리는 모두 저 테스트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모두 T(thinking) 사고 유형이었다. 우울함에 빠져있지 않고 화분을 사는 걸로 해결한 행동을 칭찬하고, 대화를 더 이어가려는 관심으로 무슨 화분 샀냐고 물었으니 충분한 대답을 한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F유형의 대답들을 전해 듣고 우린 모두 폭소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설마, 정말, 그렇게 답하는 사람이 있다고?
곧장 집에 와서 백군에게 테스트를 했다. 분명 미니멀리스트라면서 화분에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를 나무랄 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예상 대답 "화분을 또 샀어?"였다.
"나 어제 우울해서 화분 샀어."
"어제? 어제 왜 우울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나는 테스트도 잊고 저 대답에 그만 감동받아버렸다.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그동안 백군한테 저질렀던 만행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직장대표 흉을 보는 백군한테 대표 입장이 되어보라고 입바른 소리를 하곤, 서운해하는 그를 속 좁은 놈 취급했던 것, 밖에서 있었던 서운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속상하면 너만 손해니까 빨리 잊어버리라며 투덜이 취급을 했던 것 등 다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이 사건의 임팩트가 컸던지 이후로 나는 좀 달라지게 되었다. 나의 감정에 관심을 가져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따뜻한 일인지, 위로가 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테스트를 해보니 나는 ENTP, 백군은 ISFJ였다. 어쩜 이렇게 만났는지. 결혼 초반에 그렇게 매일을 싸운 게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진작 MBTI를 알았다면 서로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후로 나는 이렇게 반대로 만난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백군의 성향이 가진 단점을 지적하는 대신 장점을 배우려고 노력해봤다. 마치 개인과외를 받는 것처럼 행동이나 말을 관찰해서 좋은 부분은 따라 하고, 지적하는 부분을 새겨봤다.
요즘 고민상담을 청해 오는 친구의 마음에 먼저 공감해주고, 옳고 그름의 잣대로 성급하게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백군의 속상한 마음을 먼저 염려해주고, 같은 마음으로 느껴보려는 나를 보면서 조금 성장한 것 같아 뿌듯했다. 나는 좋은 EINSTFPJ가 될 거다.
"어제는 왜 우울했어? 우울해서 화분을 샀다니 잘했다!"
글쎄.. 친구들은 다르게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나는 분명 조금 변했다.
그렇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