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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Jan 28. 2022

소설가가 궁금할 때

<소설가의 일>  김연수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을 읽고 나는 좀 우울해졌다.

한라산 입구에 서서 "정상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보이지도 않는 정상을 가리키며 "이길로 쭉 올라가면 됩니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어도 '내 체력으론 무리겠는걸' 하는 기분이 들 때 우울해지는 기분 같은 거랄까.

 '애초에 한라산까진 안 갈라 그랬어!' 라며 발길을 돌려보아도 씁쓸한 그런 기분..

진짜, 소설가가 될 생각까지는 없었다. 이 책이 그렇게 무서운 책이다.

동네 뒷산 몇 번 올라가 본 사람한테 히말라야 등반을 꿈꾸게 하는 그런 책 말이다.

일단 히말라야 등반까지 꿈꿔본 사람이라면 뒷산이 시시해 보이는 건 당연지사.

그렇게 내 글을 발행할 용기를 잃었다. 소소하게 뒷산 다니는 것도 좋았는데 ㅜ  


김연수 작가는 '재능은 필요 없고 매일 하다 보면 돼.'라고 꾸준함을 강조한다. 얼핏 들으면 쉬운 것처럼 들리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꾸준함이 가장 어려운 재능이다. 그래도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팁이 있는데,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만큼 매일 글을 쓰라는 것. 헨리 밀러도 김연수 작가도 입을 모아 말한다면 틀림없이 맞는 말이겠지. 매일 한편씩 글을 써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니 하늘을 날 것만 같다. 

무조건 하루 3시간만 앉아서 글을 쓰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 매일 최소 6시간 이상씩은 앉아있었으니까.. (그랬는데... 이 정도였다고?!)라고 놀라도 뭐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여하튼 나는 속 편하게 매일 3시간씩 (무슨 글이든 간에) 쓰는 인간이 될 거다.


아래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에서 밑줄치고 별표한 내용을 옮겼다.  





스무 살의 내가 역전 근방에서 매일 몇 편씩, 때로는 몇십 편씩의 시를 노트에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를 비롯한 동네 가게 주인들의 세계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획기적으로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갑자기 나빠지지도 않는 세계 속에서, 어떤 희망이나 두려움도 없이, 마치 그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시를 썼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나면 그건 도무지 내가 쓴 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사람, 즉 신인이 됐다.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19p

재능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이 매일 글을 쓸 수 있으면 한순간 작가가 될 수도 있다니. 그나저나 어떤 희망이나 두려움도 없이, 마치 그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일하는 사람이 가능한 걸까.





재능 따위는 그만 떠들고, 이 설계도에 따라 스스로 자신을 소설 기계로 만들어보기 바란다. 이건 1932년 자신의 첫 소설인 <북회귀선>을 쓰면서 헨리 밀러가 창안한 11 계명이다.

1. 한 번에 하나씩 일해서 끝까지 쓰라.

2. 새 소설을 구상하거나 <검은 봄>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지 마라.

3. 안달복달하지 마라. 지금 손에 잡은 게 무엇이든 침착하게, 기쁘게, 저돌적으로 일하라.

4. 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계획에 따라서 작업하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만 써라! (아싸)

5. 새로 뭘 만들지 못할 때도 일은 할 수 있다.

6. 새 비료를 뿌리기보다는 매일 조금씩 땅을 다져라.

7. 늘 인간답게!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곳에 다니고, 내킨다면 술도 마셔라.

8. 짐수레 말이 되지 말라! 일할 때는 오직 즐거움만이 느껴져야 한다.

9. 그러고 싶다면 계획을 따르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다음날에는 다시 계획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몰입하라. 점점 좁혀라. 거부하라.

10. 쓰고 싶은 책들을 잊어라. 지금 쓰고 있는 책만을 생각하라.

11. 언제나 제일 먼저 할 일은 글을 쓰는 일.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는 등, 다른 모든 일들은 그다음에.

\24p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만 쓰라는 말과 언제나 제일 먼저 할 일은 글을 쓰는 일이라는 헨리 밀러의 계명을 나도 따라 보기로 했다.



가지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밀고 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이 사실을 이해하면서부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많이 원하자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고 마음먹었다. 왜 안 되겠는가?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면 새드엔딩이다. 원하는 걸 가지거나, 가지지 못하거나, 그게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엔딩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완성된다.

\41p

새드엔딩이 두려워서 나 자신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던 나의 시간을 돌아봄.

자. 이제 백만장자가 되어봐!



이게 현대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윤리가 아닐까. 자신의 불안을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는 용기, 미래에 대한 헛된 약속에 지금을 희생하지 않는 마음, 다시 말해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

\51p

그러니까.. 이게 젤 어렵다니까요.



세상의 모든 것은 가만히 놔두면 변한다. 전부 안 좋게 변한다.

-

가만히 놔두면 안 좋게 변하는 건 운명이나 팔자 탓이 아니라 이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과학에서는 이걸 '엔트로피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

이런 우주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건 여러 번 고칠수록 문장이 좋아진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74p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군가 고민할 때, 나는 무조건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다. 외부의 사건이 이끄는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 변화의 곡선을 지나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그러니 일단 써보자. 다리가 불탈 때까지는 써보자. 그러고 나서 계속 쓸 것인지 결정하자.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하고 싶다면, 일단 해보자.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 테니까. 결과가 아니라 그 변화에 집중하는 것. 여기에 핵심이 있다.

\98p

여기에서 너무나 마음이 동한 나머지 소설가를 결심할 뻔했다. (사실 결심했었다. 책을 다 보기 전까진)




느리게 쓴다는 건 나만이 바라본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이 세계의 모습은 과연 어떤지 알게 될 때까지 쓴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어떤 플롯에 의해 짜여졌으며, 그 이유와 의미는 무엇인지 알 때까지 쓴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일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하고, 십 년을 넘기기도 하고, 때로 평생을 다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귀스타브 플로베르나 레오 톨스토이나 제임스 조이스가 한 일, 그러니까 소설가의 일이다.

\245p

여기에서 소설가가 되어볼까 하는 마음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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