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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Dec 27. 2021

두 개의 결혼반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

내 입으로 뱉기가 어색한 단어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엔 '남편' 혹은 '신랑'이라는 단어도 포함되어 있다. 그건 글로 쓰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앞으로 남편은 '백군'이라고 쓰기로 한다. 


백군과 만난 사연을 읽었다면 우리가 얼마나 대충 결혼을 했는지 알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혼수며 예물 같은 건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였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결혼반지 하나는 하고 싶었다. 최소한의 연결고리 랄까.

결혼식을 한 오키나와에서 적당한 반지를 보면 구입하려고 찾아봤지만 찾는 물건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법, 반지를 판매하는 매장조차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한국에 돌아와서 한참 잊어버리고 있다가. 마침 작업실 앞에 주얼리샵이 있어 들어가 보게 되었다. 커플링이 몇 종류 없어서 고르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이즈도 마침 딱 맞아서 두 개 합쳐 4만 원 정도를 주고 바로 끼고 나왔다. 큐빅 하나 박혀있지 않은 심플한 은반지였다. 여자고 남자고 상관없이 무난하게 잘 어울렸고 우리가 생각한 결혼반지로 딱 적당했다. 나는 이 반지를 아직도 끼고 있고, 거의 빼지 않는다. 원래 액세서리를 즐기지 않는 편이고, 작심하고 치장을 해도 내내 신경 쓰여 하루를 못 넘기는데, 이 반지는 이제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이 은반지가 두 개의 결혼반지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의 결혼반지는 시어머니가 사주신 것이다. 결혼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 무렵 식사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너희 결혼반지는 엄마가 사주고 싶은데, 내가 하나 해주면 안 될까?" 그러자 백군은 결혼반지 있는데 뭐하러 사냐며 필요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래도 재차 의사를 묻는 말씀이 조심스러워 나는 "좋아요."라고 대답해 버렸다. 후에 이 대답을 꽤 후회했지만... 여하튼 그렇게 우리는 종로 금은방에 갔다. 사실 백군과 내가 새 결혼반지를 원해서 좋다고 대답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식도, 상견례도 아무것도 안 한다는 자식들한테, 뭐 하나 본인 마음대로 못하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게 해 드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금은방에선 두툼한 금에 다이아가 잔뜩 달린 것만 보여주셨다. 우린 계속해서 더 작은 것 더 얇은 것을 부르짖었고, 주인은 특이한 손님 취급을 했고, 시어머닌 없어 보인다고 나무라셨다. 결국 깨끗한 백금에 작은 다이아가 박힌 반지를 손가락 사이즈에 맞게 주문해 두고, 며칠 후에 찾아왔다. 이렇게 찾아온 반지는 시댁에 갈 때라도 끼자고 합의하고 고이 모셔놓았는데, 몇 번 끼지도 않은 반지에 다이아가 없어진 것이다. 방을 다 뒤집어도 없기에 결국 다시 금은방에 맡겨 세팅을 하고 그 후엔 한 번도 끼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두 개의 결혼반지를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가 변하지 않아서 영원함을 상징해서 결혼반지로 고르는데, 반대로 은반지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교훈'을 준다. 은반지는 어쩌다 거친일을 해야 해서 며칠 빼두면 어김없이 색이 변해있다. 계속해서 끼고 있어야 반짝하게 빛이 난다. 

결혼생활은 영원할 거라 믿고 있는 것보다, 영원하지 않다는 교훈을 새기는 쪽이 훨씬 유익하지 않을까? 반지를 볼 때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새겨 볼 수 있는 우리 결혼반지에 더욱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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