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들을 수 있을까

by 구스리

희한하다. 어제 문득 임동혁이 생각 나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봤고, 그에게 사생활 논란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그리고 오늘 새벽, 그가 SNS에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지려 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올라왔다. 다행히 그는 아직 나와 같은 세상에서 숨 쉬고 있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남겼을 글을 읽어보니 ‘다행히’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도 분명 천사는 아니었으나 이 세상은 살아가기에 너무 혹독했다' 그 문장이 자꾸 맴돈다. 그가 계속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은, 이제 그를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을까.


요즘엔 ‘쇼팽’ 하면 ‘조성진’이겠지만 나는 아직 ‘임동혁’이다. 쇼팽콩쿠르에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잘생긴 건 아니지만 피아노 연주자답게 뽀얀 얼굴에 기다란 손가락을 가진 그는 분명 미소년에 속했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는 임동혁이 연주하는 쇼팽의 음악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쇼팽의 피아노 곡들이 낭만적이라는 건 느낄 수 있다. 성능 좋은 이어폰을 끼고 듣고 있으면 왠지 슬픈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녹턴을 그가 연주한다. 그것도 아주 잘. 학창 시절, 우리 학교에 그런 선배가 있었다면 분명 짝사랑에 애가 닳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임동혁 독주회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최근까지는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도 잊고 살다가 하필 어제 갑자기 그가 생각났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그래도 지금은 간혹 연주회도 열고 잘 있나 보네... 씁쓸한 기분을 남긴 채 또 한 번 관심이 사그라드는가 싶었는데 이렇게나 오래 생각하고 있다. 그의 마음은 어떨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일까. 그의 연주를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임동혁이 발표한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 앨범은 내가 가졌던 유일한 클래식 CD 앨범이기도 하다. 바흐 음악은 수학적이고 규칙이 엄격한 음악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내게 임동혁은 그 편견을 깨준 연주자였다. 건반 위에서 가볍게 뛰노는 열 손가락이 눈에 그려질 정도로 통통 튀기도 하고, 어떤 변주곡은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본인은 다소 천박할지는 몰라도 자신의 음악은 그렇지 않다는 그의 고백을 믿는다. 언제가 되었든 그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게 된다면 그 앞에서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고 싶다. 화려한 무대 뒤의 삶이 지독히도 외로웠다는 그를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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