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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Jul 21. 2021

수국 꽃다발과  막걸리 두 병

슬픔이여 안녕


  큰오빠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왜 세월은 멈출 줄을 모르는 걸까!"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아기 때부터 봐  왔던 여동생에게 회갑이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여간 난감했던 모양이다.


 특별한 생일을 맞게  되었다고  여기저기서  사랑을 주고 시간을  내주고 하는 통에 한 2주간은  분주하기도 하고 그러더니 과식도 해 위장에 탈이 나기도 했다. 아끼던 동생이 달덩이 만한  수국 꽃다발을 보내오기도 하고 친척들과, 가족들, 친구들의 관심에  뭐가 뭔지 모르고 나이를 홀딱 먹어 치웠다. 물론 그전에 오륙 개월  간에는 돌아올 그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줄 마음의 정성을 담은 선물을 마련한다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 준비하고 그날은  다가왔고 몇 개의  케이크를 쪼개는 사이에 나의 날은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강남 사는 친구가 나오라고 했다.  코로나가 비상인 시국이라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  친구를 만났다.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맛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차도 마시고 하는 사이에 그녀가 12월에  인사동에서 미술전시회를 한다고 한다. 한 번들은 얘기도 아닌데 날까지 정했다고 하니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나는 그동안 뭘 해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속에서 몸을 움츠린 채  집으로 돌아왔고  난  내가 속상한  줄 모르고 있었다. 코로나 4단계가 실시된 날 낮에  몇몇  오래된 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과 2인, 3인이  따로 앉아  불편한 식사를 하고 뒤풀이 장소를 찾다가

여의치 않아 한 명은 집에 가고 4명만 남아 카페에 갈 수 있었다. 그때에  거길 가지 말았어야 했다. 서럽지 않을 만큼의 축하인사를  받았음에도 이 친구들은 생일 당일에  축하말 하나 보내는 사람이 없었다. 자고 나서 보니 밤 10시 30분에  한 친구가 까먹을 뻔했다며 인사를 한 것을 알았다.  한참 자리가 무르익었는데 그 얘길 하고 말았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소식도 없어 서운했다고. 그것도 한 번 말한 게 아니고 여러 번을 꾸역꾸역 말하니까  친구들이 그제사 앉은 사람들 생일을 달력에 저장하면서 요새는 까막까막하니까 자진신고하자고  그랬다. 사실 나부터도 남의 생일 못 챙기는 박사면서 주책맞은 발언을 하고만 것이다. 불볕더위에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부터  어젯밤까지  내 속은

끓고 있었다.


 나의 속절없는  인생에 대한 후회의 시간이었는지  반성의 의미였는지  도무지 마음이 진정이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일찍 자려고 자리에  들었는데  큰 애가 자꾸 막걸리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눈이 말똥말똥해 거실로 나왔다. 오후에 이웃 동생이 자기애가 보내왔다고 막걸리 한 병을 들고 왔는데  큰애가 또 내일 휴가라서 기분 내려고 한 병 사 와서  갑자기 집에 막걸리가 많아졌다.  우리 식구 주량에는 넘치는 양인데  폭염주의보도 있고  내 맘도 끓고 해서  한 잔 부어라 마셔라가 고 싶어 졌다. 막걸리 두 병을 다 꺼내놓고 가족들을 향해 호객행위를 해도  달려드는 사람이 없다. 쓸쓸한 여자가  외롭게 병을 흔들고 잔을 들다 보니  금이 간 걸 발견했는데도 무시하고  한 잔 따랐다. 밤막걸리부터  따랐더니 훅 밤 향내가 구수하다. 한 모금  쭉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는지 아니면 엄마에 대한 동정표였는지는 모르지만, 큰애도 오고 남편도 동참해  한 잔씩 나누었다. 그러다 새로운 병도 열게 되었다. 그것은 이웃 동생이 가져온 막걸리다. 뭐 구름을 닮은 막걸리를 생산하려고  애써 만든 거라면서 요즘 아주 인기상품이란다. 처음  마셔본 막걸리 맛이라 색달랐다. 생쌀로 만들었다는데 쌀을 갈아 만든 맛이랄까. 마무튼  하얀 막걸리까지  텅텅 비우고  주량 약한 우리 가족은 얼굴이 벌게졌다.


빈 술병들


 내가 그랬다. "여러분~  가족회의가 하고 싶다~~~"


 우리 가족은  내가 가족회의가 하고 싶다면 긴급사태라는 것을 다 안다.  

남편: 안 하고 싶은데~~~

나: 순이 외로운 밤이야~~~

그랬더니 살짝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 끝말잇기  5분만 할까?"

그러자고 했다.  늘  그렇지만 남편은 빼고 우리끼리 쉬운 걸로 시작했다. 좀 하다가는 제일 나쁜 말만 골라하자고 했더니 우리는 심한 말도 참 잘했다.

내용은 술이 적당히 깬 지금엔 생각이 나지가 않지만 말이다. 적당히 놀고 있는데 남편이 나온다.

 "여러분 오늘은 순이를 위해  노래 한 곡씩 불러 주세요~~"

다 같이  "~~~~네~~~~~~" , 그런다.

남편은 "혼자 있어도 행복한 사람"을 기타를 치며 불렀고, 아이들은 노래방 출신들이라  가사를 끝까지 잘 몰라  짧게  한 곡씩 부르고 박수도 받고 그랬다.


"여러분.  나는 왜 안 시키나?"

"아~~당신은  행복한 사람 불러."

~~ 그대 사랑하는 난 복한 사람

      잊혀질 땐  잊혀진대도~

      띠리리리~~~~~


 처음엔 한 사람은 춤을 추고 나는 노래를 했다가 나중엔 지터벅을 추면서 함께 놀다가 그러면서 가족회의(?)는 마무리가 되었다.


수국이


 띵동!  벨을 누르며 혹여 외로울까 봐 연핑크 수국을 가져온 사람.

오늘의 흥취를 예견이라도 한 듯 한 병의 막걸리를 가져다준 사람.

좋은 사람들.


 그들이 지켜보는데 기분 좋은  일을 더 생각할 일이지 뭐 그리 우울통에 빠지려고  애를 쓰는 2~3일이었는지 참 싫다.  나도 때때로 그 누군가에게 수국 꽃다발이고, 막걸리 한 병이 되어주려고 애써 보려 한다. 남 탓하려는 질기고 나쁜 습관은  저 한강물에나 떠내려가라고 내던지려고 한다. 그리고 각오한 것이 한 가지 있다.

10년이 지난 칠순 때에는 후회하지 않게 잘살았다 할 만큼 요모조모 옹골지게 살아보자고.


막콜리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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