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맑지만 밖을 나가기가 두려워지는 중복이다. 두어 달 정도 길러오던 호박에게 올라갈 길을 터주었다. 그간에는 준비과정인지 더디게 자라오더니 8월 같은 7월 날씨에 무럭무럭 커 오고 있어, 남는 옷걸이를 펴고 면사로 사슬 뜨기를 해서 감아준 다음 커튼봉에 올려 줬다. 힘차게 제 양껏 올라가서, 그 덕에 우리 가족에게 그늘이 되어주기도 하고 할 테니 덕분에 시원한 여름이 될 것 같다. 라디오에서는 언더 더 씨~~~가 들려온다.
밭에서 따온, 길쭉한 단호박을 사 와서다. 그 속이 하도 빨갛고 고와서 키워보자고 진작부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게 어쩌면 추억 때문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어릴 적 여름날에 비가 내리는 날이면 밖에 나가지도 못해 맨질맨질한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자고 그랬다. 크느라 그랬을까. 침을 질질 흘리고
흠뻑 잠에 취했다가 부스스 깨서 보면 서쪽으로 지는 해가 그때사 걷힌 구름 사이로 비쳐온다. 담장을 타고 꿋꿋하게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호박 줄기 사이로 빠꼼히 피어나는 호박꽃은 눈을 비비며 아침인지 저녁인지 구분 못하는 어린아이의 눈에는 꽃 중의 꽃으로 보였다. 어디서 왔는지 벌이 주변을 맴돌기도 하고, 가끔은 잠자리도 꽃구경을 왔는지 휙 하고 곡선을 깊이 그리며 날아갔다. 상쾌한 햇살이 뉘엿뉘엿 질 때까지 어린아이는 턱을 괴고
한여름의 향연을 즐기곤 했다.
그런 까닭 이어선지 호박과 친해지는 가운데 반려식물이란 말을 알게 되었다. 늘 화초와 같이 하며 살고 있긴 했어도 그 애들과 내가 함께 산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나랑 같이 사는 바에 기왕이면 나의 추억과도 함께 한다면 더 재밌겠다 싶어서 시작한 호박 키우기가 오늘처럼 줄을 매달아 줄 만큼까지되었다.
딸애의 물고기 기르기가 나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 애는 물속에 수경을 쓰고 헤엄치면서 바다세상 보는 놀이를 좋아하는데 아마도 물고기를돌보면서 바닷속을 헤엄치며 바라보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물속의 삼총사
하늘 높이까지 차오른 여름 앞에서, 요즘처럼 친구 만나기도 고단한 때에 그 나름의 휴식처를 스스로 만들어가며 우리는 지금을 잘 살아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