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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Oct 08. 2021

혼자서는 처음으로  해본  일이라면

따사로운 곳에서

 가을이면 누구나  하늘은 높고 구름은 두둥실  하다는 것을 안다. 물론 올 가을처럼  가을장마가 길었던  해도 없었지만, 그런 연유로  인한 것인지  하늘이 더없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우리 아이들 말로는  엄마의  귀농체험 생활이라고 하는데  일주일간의 느닷없는 가을  나들이는 내게 있어 처음인 게 여러 가지다.


 1. 남의 집에서  혼자 잠을 잤다는 것.

 2. 일주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  지냈다는 것.

 3. 지인의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4. 지인의 집에서 고추도 따고

 5. 지인의 집에서 꽃차도 만들고

 6. 지인의 집에서 오솔길을 거닐어 보고

 7. 지인의 집에서 새벽 운동을 해 보고

 8. 지인의 집에서  밤을 주우러 가기도 하고

 9. 지인의 집에서  달래도 캐보고, 도라지도 캐보고, 땅속 깊은 곳까지 파서 우엉도 힘겹게  뽑아보고, 고구마순도 따 보고, 꽃씨도  받아보고

10. 지인의 옆집에서 그릴에 고기도 구워  먹어보고

11. 지인의 옆집에서  산초와 두부를 들기름에 지글짝 보글짝 지져 먹어도 보고


키가 큰 코스모스


12. 지인의 집 뜰앞에서 코스모스, 과꽃, 백일홍, 곤드레꽃, 도라지꽃, 메리골드꽃, 호박꽃, 구절초, 해바라기, 봉숭아, 보라색 부추꽃, 소꿉놀이하는 듯 심어진 여러 가지 다육이 식물들도 보고


마가목


13. 빨간 마가목 열매와  그 가지를 따서  말리고

14. 따사로운 햇살에 윗옷을 걷어올려 등에 쐬어보고


딸기를 닮은 산딸나무 열매


15. 지인의 절친 댁에 함께 가서 커피와 직접 말린 감로차도 마시고, 거기서 딸기  모양을 한 산딸나무 열매도 보고, 크리스털 꽃병에 꽂힌 새댁 같은 칼꽃을 보았고, 금방 삶아 온기가 있는 햇땅콩을 맛보았고, 거기다  선물로 새벽에 뽑아 씻어둔 잎사귀 달린 땅콩과 아직 이슬이 남아있는 뽀얀 조선호박도 몇 개나  받아 들고 내려왔고, 아키네시아 꽃씨를 따주셔서 가지고 왔다.

16. 지인 내외분과 백덕사라는 곳에 남편이 여기로 출발할 때 꼭 가보라고 권하길래 가봤다. 얘기하던 대로 가던 길이 솔깃했다. 다 올라가 가볍게 합장을 하고, 거기 쉴만한  잘 지어진 정자에서  솔솔 불어주는 바람과 함께 기둥을 베개 삼아  한숨 잤다.


내  손 안에 온 산초


개운한 기분으로 내려오는 중에 산초가 한창이어서  그것을 한 움큼 따고, 청솔모가 꺾어 떨어뜨렸다는 주먹만 한 잣을 열 개도 넘게 주웠더니  손바닥에 진이 묻어 끈적끈적했다. 뭔가를 주울 게 있나 땅만 보고 내려오다 보니까 알밤이 여기저기에 있어 호주머니가 볼록하게 채워 가지고 내려왔다.

17. 어느 날은 지인이 개 짖는 소리가 무서워 잘 다니지 않는다는 또 다른 골목에서는  담장에 한가득 드리워진  선홍빛 다알리아를 보았고

냉면집 근처의 대추


     

18. 점심 먹으러 간 냉면집 근처에서 1톤 트럭 만한  나무에 울긋불긋 매달린 대추나무와 서로 어울려 살았는지 실하게 잘 익은 울타리콩을  보았다.

19. 다알리아를 봤던 길에서  왼쪽으로 다리를 건너려니 계곡물의 촬촬거리는  소리가 산을 울리고  있었고, 벌써 낙엽이 밟히는 오솔길에는  노란 들국화와  벌겋게  물들어가는 두릅나무 군락이  장관이다. 150여 가구가  살았다가 지금은 17가구가  남았고, 그것도  외지인이  반도 넘는다는  이곳에는 은근히  집터였을 만한 곳과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듯 뽕나무가 계곡 사이로 내내 있다. 계속 오르막을 오르는데 에어컨 바람이 어디서 나오지?  하는 곳에 동굴 두 개가 있다.

6.25 때는 거기서 마을 사람 모두가 숨어 지냈다고 한다. 그중 한 곳엔 저장해야 할 것들이 있는지 항아리 두어 개가 눈에 띈다. 어제 따 본 산초가  더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발에 미끄덩  밟히는 것이 있다. 이건 뭐지 하고 보니까 이번에는 작은 대추알만 한 초록색 열매가 있어 조심스럽게 주워 보았다. 그것은 농익어 떨어진  참다래라고 했다.

까서 쭉 눌러봤더니 이건 축소판 키위 느낌이다.  크기와는 반대로 맛은 키위의 열 배?


참다래맛을 보신 적이  있나요~

 

한참을 주워서 까먹었다. 누구 체면도 무엇도  없이 우리는 옛사람들이 그랬을법한  자연을 그대로 흡입했다. 그 이후의 밤엔 뱃속이 약간 부글거리는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키 큰  낙엽송이  비올 바람에 휘억거리고 있는 산자락을  훨씬 더 오르다 보니  진정 늘 걸어보고 싶었던 낙엽이 오소록한 길이 나왔다. 껀중하게 자란 나무 밑에 떨어진  개호두를 발견 했다. 그것의 겉껍질은  익기 전의 복숭아 태를 하고 있었다. 지인의 바깥분이 돌로 깨 주셔 맛을 볼 수 있었다. 호두 맛이긴 한데 개 맛이다. 별로 맛도 없는 데다  껍질은 너무 단단해  그 맛을 즐기지는 못하였다.

여기 살던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머루랑 다래랑 먹고 편케 살았을 것 같다.  가을이면 맑아진 하늘과 떠가는 구름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영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큰 비에 바위가 계곡 사이로 오 리를 떠내려갈 수  있는 악천후를 견디면서도 가을이 오면, 샛노랗게 피어난 들국화를 꺾어 맑고 청량한  햇볕에  말린 다음, 향내 그윽한  국화차를 즐겼을 테지. 국화꽃이 띄워진 찻잔 안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들여다보면서 세상 살맛 난다고 느꼈으려나.



하늘과 낙엽송



 오래전부터  그리 살아왔을 법한 이런 곳에  6.25라는 전쟁의  쓰라린 상처가 다녀갔고, 또 산업화라는 물결 앞에서 사람들은 하나 둘  도회지로  떠나갔겠지. 귀엽게 속살대던 시냇물 소리를 뒤로 하고, 폭풍우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던 덩치 큰 나무들이  내 집 서까래를 무너뜨리는  고단한  삶의 터전이기도 한 이곳을 뒤로하고, 가을의 짧은 평온이지만,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방망이로 두들겨 빨아 줄에 걸어 놓으면 금세 명태처럼  말라버리는 빨래를 마다하고,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부터  하나둘씩 떠나갔겠지. 타지로 나갔다가 명절 때나 오는 옆집 자식이 눈부신 하얀 운동화를  신고 오는 것을 보고, 어느 날 갑자기 검정고무신이 부끄러워진 날, 우리 집  아들과 딸들을  점점 도회지로 내몰았겠지.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돌고  돌아  나의 지인도  고향을 닮은 이곳에 당신의 또 다른 집을 마련했으려나.


 우리는 살면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된다. 나의 본집을 떠나  살게 된 곳에서  만난 지  20년이 넘은  지인은  늘 내게 따뜻했다. 그녀는 내게만 그런 것은 아니겠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그녀가 자꾸  믿음직스러웠다. 그녀는 평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스케치를

하더니 출중한 산수화가로 살고 있다. 어쩌면

스케치를 다니면서 늘 살만한 곳을 탐색하며 다녔을지는 본인도 알 수 없었으리라.


  어쨌든 새로 둥지를 튼 여기서 지내면서  내 집  말고도 마을 저 먼  곳에까지 예쁜 꽃들로 채워 당신의 꽃마음을 펼쳐  나가고 있는 모습은 보기가 좋다. 그간에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와서인지 만나는 이마다  표정이  살 궂다.   


 이런 곳에서 일주일을 살고 내일이면 집으로 간다.

이 기운이 내 삶에 힘으로 작용하려는지 현재 몸이 그리고 마음이 많이 가볍다.


                               따사로운 가정에서 씀.



&여기에서 먹은 음식

 삼식이 매운탕, 생오이, 어린 배추김치, 닭백숙,

무 장아찌, 배추전, 삶은 밤, 삶은 고구마, 삶은 땅콩, 생땅콩, 올해에 담근 머루와인, 콩나물국, 메밀막국수, 냉면, 감자옹심이, 줄기가 국수 굵기와 같은  열무국수, 잡채, 감자 치즈전, 호박전, 민들레. 달래. 케일. 양상추가 곁들여진 간장  샐러드, 찐 감자, 사과, 복숭아, 배, 호박영지즙, 약초즙, 유산균, 콜라겐, 검은콩 두유+보리싹 가루, 배추 겉절이, 바로 캐서 씻은 하얀 도라지 뿌리, 오래 자란 생더덕, 막걸리, 고량주, 산초 두부부침, 돼지 갈빗살, 캐나다산 숙성된 쇠고기, 삼겹살, 깻잎 절임, 콩나물 무침, 북어 수제비, 오이짠지 물김치, 보리밥, 밥에 얹은 알 옥수수와 약콩, 고구마순 데친 김치, 취나물 볶음, 달래 간장, 된장, 고추장, 메리골드꽃차, 고들빼기 초절임, 루이보스티, 커피, 감로차, 노가리 구이, 민어구이, 네모난 김밥.


방금 목욕한 도라지

ㅡ 몇 가지만 빼면 모두 다 옛 음식이다.ㅡ


이래서인지

언니뻘인

지인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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