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놀이
이건 내 자랑이다.
얼른 보기엔 자랑 같지만 쭉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반대의 이야기이다. 지금 말하려는 오징어 전쟁의 설욕을 당하기 전까지는 호기롭게 뛰어 놀기도 하고 우리 마을에서 내가 제일 센 것처럼 살았다. 우물 안 개구리는 제 우물 안에서는 별반 무서울 것도 없이 잘도 놀고 겁도 없이 나대기도 할 것이다. 제가 보아 봤댔자 우물 위의 망원렌즈만 한 하늘만 둥그러니 보일 텐데 뭐가 얼마나 두렵고 겁이 날 일이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듯 평온하던 나의 우물 안에서의 환상은 초5 때 깨졌다.
체육시간에도 가끔씩 자유시간이 주어지곤 했다. 다음 주에 장학사가 방문을 한다는 통보가 나면 주로 그런 때에 우리들은 끼리끼리 그냥 놀았다. 운동장에 풀어헤쳐진 우리는 아이들마다 노는 방법도 다양해서 어떤 애는 그네를 타고 또 어떤 애는 고무줄놀이 또 철봉에서 턱걸이를 하는 아이, 줄넘기를 하는 아이 등등 여러 형태의 그림을 그려냈다.
상당히 전투적인 예닐곱 명은 나와 같이 오징어(수리미) 놀이를 했다. 땅에다가 오징어 형상을 그려 놓고 아래쪽에 입구를 만들어 놓는다. 술래는 맨 위쪽에서 지키고 있는데 그 술래를 뚫고 오징어 귀에 속하는 동그라미 안에 발을 디디면 이기는 것이다. 이거야 요즘 말로 껌이다 하고 덤볐다.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술래를 했고 우리는 한 사람씩 포효하는 호랑이 소리를 내면서 술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오른발이든 왼발이든 동그라미 안에만 닿으면 승리다. 그렇게 재미나게 한참을 술래를 면하고 놀았다. 이건 세상이 모두 다 내 것인 것 같았다.
세상은 항상 내 편이 아님은 그리 오래지 않아 드러나고 마는 순간이 왔다. 한 번도 술래가 되지 않아 기고만장한 내가 속으로 제일 날쌔고 힘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우리 반 친구 중에 나보다 훨씬 센 아이 하나가 떡 버티고는 앞으로 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한참을 이리 빼고 저리 비틀고를 했지만, 도무지 목표점에 도달하지를 못하고 떡대한테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처음으로 놀이에서 나보다 센 아이를 본 셈이다. 평소에는 볼품 나는 아이는 아니어서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날은 용을 써 봐도 맘대로 되지가 않았다. 얼마나 안간힘을 써 댔는지 얼굴에 멍이 들기도 하고 무릎이 아리기도 했던 것 같다.
내게 강적으로 보였던 그 친구는 힘만 센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 그 친구를 유심히 지켜보곤 했는데 언제고 뭐든 나보다 한 수 위였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졸업 기념으로 이종 오빠가 겨울연가를 사 줬는데 그 친구에게 빌려 주고 돌려받지 못한 것도 기억이 난다. 그 애는 나와 다른 학교에 진학했고, 그 후로 서로 얼굴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수 외나무다리라고 대학 시험장에서 그 애를 보게 되다니 갑자기 어릴 때의 떡대가 생각났다. 그 애는 합격하고 제 전공을 살려 지금도 어디선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고 들었다. 그 친구와는 한두 가지 추억이 더 있지만, 씁쓸해서 더 말하기 싫다. 그런 것까지 말하면 그때 하수였던 내가 “지금도 역시 그렇다.”를 시인하는 꼴이 될 수 있어서이기도 하고 왠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초등시절 그 친구의 힘센 어깨가 신호탄이 되는 좌절로 오면서 그 이후로도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의 경험들이 쌓여 갔다. 우물 안에서의 나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나의 꺼풀을 벗어 가면서 점점 단단해져 갔고, 그러면서 어른이 되었다.
살다 보면 합격, 입학, 승진, 결혼, 출산 등등 우리 주변에는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말들이 많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쓰디쓴 고배를 마시면서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고 또 넘어지고 깨졌다가도 치료 후 새날을 기약하는 사람들도 무수히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넘어져 보지 않으면, 한마디로 승승장구하다 보면 어쩌다가 한번 오는 시련을 감당하는 힘이 모자랄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 자기만 겪는 시련인양 몹시도 힘들어하고 “나의 사전에 실패란 없다.” 는 있을 수 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그런 사람이 겪는 실패의 쓴 맛은 저 질곡으로 빠지는 치명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내가 어릴 때 겪어 본 절망감, 그것은 어찌 보면 앞으로의 삶에 보약으로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살다 보면 힘센 놈도 있고 나보다 날 센 놈도 있으니 나만 잘난 줄 알고 사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을 오징어 놀이를 통해서 알아낸 것이다.
놀이는 이런 나의 경험으로 보아, 아이들의 내면을 단단히 해 주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많이 뛰어놀고 다른 아이들과 더불어 수백 가지의 다른 상황들을 접해 보다 보면, 위기 대처 능력도 키워지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설 것인가 아니면 잠시 물러서 있어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도 있으니 놀이만큼 큰 학습효과도 없겠다 싶다.
그 친구를 한 번쯤 만나도 될 텐데 난 그러지 못 하고 있다. 서로 사는 형태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내게 용기가 없어서일까. 어쨌든 그 애는 내게 상수였고 엄청나게 센 친구였다. 그래서 나는 오징어 놀이를 오징어 전쟁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