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또르쟈니 Mar 19. 2016

목련꽃그늘 아래서

 지금처럼 황사가 하늘을 뿌옇게 덮을 때면, 목련은 조금씩 입을 열어서 세상 구경을 나온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면서 저마다 새봄이 왔음을 반가워한다. 이렇듯 목련이 아파트 화단을 환히 밝힐 때면,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고지식한 듯 뿔테 안경을 쓰셨던 과학 선생님의 모습 말이다.


그 해 봄에 과학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청하지 않았는데도 평소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목련꽃그늘 아래서’라는 노래를 부르셨다.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     


 수업 때마다 봐 오던, 하얀 얼굴에다 깡마른 체격을 하신 선생님께 그런 시심이 있으실 줄은 짐작도 못했다. 취한 듯 노래를 다 부르시더니 수줍게 말씀하셨다. 대학시절 첫사랑과 교정을 거닐다가 목련꽃 앞에서 불러준 노래라고.  노랫말도 예쁜데, 여자 친구 앞에서 두 손 모아 불러 주었을 그 순간을 상상만 해도, 얼른 남자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없이 뭉게구름을 바라보았다.     


 무덤덤한 과학 선생님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지금도 설거지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그분의 창백한 볼을 떠올리기도 한다.


 봄마다 이곳저곳에서 빵빵 터지는 목련꽃의 폭죽 소리는 세상 사람들을 한껏 부풀게 한다, 부산하게 시금치도 사고, 어묵도 사서는 김밥도 싸고, 샌드위치도 만들어서 들로 산으로 소풍을 간다.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이 올라오는데, 우리네 사는 곳에도 곧 봄소식이 오려나 보다. 기다려지는 꽃의 봄 ~~~~

작가의 이전글 달래 냉이 씀바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