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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Jun 12. 2016

청포도와  나팔꽃

아침형 인간

 


       "아침에 일어나서 굿모닝

       점심을 먹고 나굿 에프터눈

       친구와 헤어질 땐 굿바이

       잠자리 들기 전엔 굿 나이트~~~"


 아이들을 깨울 때 부르는 노래이다.

처음엔 음정 박자가 잘 맞아떨어지게 불러본다. 흥에 겨워 부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흥 흥 흥 흥 신나는 아침 노래가 되어 가지만, 문득 아이들이 학교 갈 시간이 다 되어가도 일어나지 않은걸 깨닫는 순간부터는 노래 부르던 목청이 한껏 커지기도 하고 때때로 노랫말을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엉덩이에 뿔이 나요 뿔이나

        제일 먼저 일어나면 예쁘고

        나중에 일어나면 못 생기~~~


        언제 일어날래 일어나~~~"



 우집은 아침마다 일어나는 일로 온갖 전쟁을 다 치른다. 그래도 요즘은 양반이 되긴 했지만, 아침형 인간인 내가 보는 관점에선 나랑 한지붕을 이고 사는 사람들의 습관은 모두 다 꽝이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나만 아침형 인간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가장 대표될 만한 근거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물가에 피어나던 나팔꽃과 청포도다.


  우물가에는 키 높은 가죽나무가 살았다. 가죽나무는 피부가 거무죽죽해서 언뜻 보아서는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친구다. 그래서인지 존재감이라고는 눈 씻고 볼래야 보기 어려운 가죽나무에겐 무슨 일인지 이파리가 무성한 청포도와 나팔꽃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청포도와 나팔꽃은 가죽나무를 잘도 타고 올라갔다.


 청포도는 손바닥만 한 이파리를 사근사근 피워내며 자라더니 거기에 개구리알일지도 모르는 열매가 생겨났다. 하루하루 알맹이가 커지더니 제법 투명해진 씨알이 주인집 아이의 침샘에 침이 고이게 하기 시작했다.


 나팔꽃은 세수하러 나온 꼬마에게 안녕! 하고 방긋 웃주더니 보랏빛 꽃잎이 이내 아이의 눈 속으로 들어와 초롱초롱 비친다.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는 두레박을 들고 우물물을 뜨고는 대야에 슉하고 들어붓는다. 눈곱만 떼는 세수이지만, 그래도 세수라고 하고는 물 묻은 얼굴로 나팔꽃도 곧 익을 청포도도 함께 올려다보니 저 끝에는 가죽나무 이파리가 세수를 잊었는지 시커멓게 휘억거리고 그 위로는 해 맞은 하늘이 눈부시다.  마당을 걸어와  벽장 아래에 걸린 수건을 내려서 얼굴을 닦고는 밥도 먹고 학교에도 간다.  


 나팔꽃이 전해준 아침 인사와 돌아올 여름이면 달달 깔끔하게 익어줄 청포도를 찜해 두고 희망찬 걸음으로 학교에 간다. 아이에게는 그래서인지 아침이 즐거웠다.  그 아이가 커서 보니 아침형 인간이 되어 있었다면 그건 필시  청포도와 나팔꽃의 반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한다.


 

출처 < http://7505.tistory.com/813 >


 학교에 다녀오면, 가죽나무가 내준 가파른 살림터에서 살고 있는 청포도 나무 그늘은 넓지는 못했지만, 나의 기대되는 여름 먹거리 아래서 가방을 풀어놓고 숙제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그러다 목이 마르면 또 물을 떠서 마시기도 하고 대야에 한가득 부은 물에 등멱도 하고 발도 씻고 그러면서 살았다.


 아이는 날이 더워질수록, 방학이 가까워질수록 좋기만 했다. 새콤달콤한 청포도를 한송이 따서 송이째 들고 다니면서 한 개 따먹고 씨를 뱉고, 또 한 개를 먹을 때마다 껍질이랑 씨를 아무 데나 탁탁 뱉으면서, 고무줄놀이도 하고 공치기도 하고, 비석 치기도 하면서 종일 신나는 여름살이를 할 테니 얼마나 신이 날꼬나.


 시냇가에서 물장구도 치고, 물이 많은 날에는 애들이랑 그 속에 들어가 송사리처럼 요리조리 물길을 가로질러가며 놀아 보기도 하고, 아이가 기대한 여름은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학교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집에 와 보니 청포도 덩굴은 문어가 시장에 축 쳐져 있듯 마당 한가운데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팔꽃은 온데간데없고 거의다 익어가려는 청포도만 마당 한가운데서 이파리를 늘어뜨린 채 힘을 쓰지 못하고 자지러져 있다. 이유인즉슨 외양간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가죽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가 보니, 톱으로 잘린 밑동에 누렇게 톱밥만 수북이 남았다.


 아이의 청포도 나무 그늘 아래서의 여름은 사라졌다. 마음 안에서 생겨난 허망함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에게는 그럴만한 실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청포도를 사랑하고 바라보고 느끼며 희망에 부풀어 있을지를 어른들은 알아내지 못했다.  아이에게는 옷과 먹거리와 학비와 뭐 그런 것만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자리한 시그름하게 잘려나간 청포도의 기대감은 가슴 자리에 휑하니 남아 있다. 공이가 되어!



 아이들에게, 나의 자녀들에게 잠을 깨우려고 들려주는 아침 노래 속에는 나의 유년시절의 절단된 꿈까지도 섞인 애절함이 있다. 그러나, 이부자리에서 나오기 싫은 나의 가족들은 애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도 꿈, 꿈나라이다.

출처 <http://sketchpan.com/?gkskvl=534017>

나팔꽃 사진 출처 <http://m.blog.daum.net/2006jk/1722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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