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마음 10년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팍팍할 때 우리는 김치를 먹거나 물이나 커피. 우유등으로 그것을 달랜다. 대개 팍팍하게 살아본 사람은 고구마 먹을 때의 팍팍함과 살면서 느끼는 고단함의 형태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안다.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는 확연히 알 수 없지만, 나의 마음은 네모이거나 세모이거나 아니면 그 모양을 알아보기 힘든 균열이 심한 그 어떤 것이었다는 게 내 마음을 자수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외출할 때도 나가면 오늘은 누구와 부딪히게 될까 두렵고, 또한 집안에서도 좋은 얼굴이지 못한 내가 미웠었다. 내가 밉기 전에는 남 탓을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고장 난 기계처럼 기름칠도 하고 뭔가 달래 가면서 다시 쓸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가 고장인지 감을 잡을 수가 있어야 손을 볼 텐데 길이 멀고도 험했다.
아이가 아파서였던 어느 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약국에를 들렀다. 약사는 키가 나보다 한 뼘은 더 커가지고 말라꽹이였다. 통성명을 하다 보니 나보다 한 살 아래란다. 그러면서 약사는 내게 약만 파는 게 아니고 내 마음 상태를 거론했다. 내 속을 들키기가 싫어서 입을 꼭 다물고 있는데 그녀는 내게 그런다. 자기도 여고 때까지 염세주의자였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그때 자신이 좋아하던 선생님께서 마음을 바꾸는데 최소기간 10년은 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단다.
자신의 세상을 멀리 하려는 생각이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단다. 그래서 낙천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마음을 하루하루씩 키워 오다 보니 지금은 이렇게 좋아졌다면서 한 번 시도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 약사에게 '왜. 내가 속에 나쁜 마음이라도 가진 것으로 보이느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내 맘 들키기였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흐응. 그런가요." 하면서 앓듯이 대꾸하고 약봉지만 구기듯 들고 집으로 왔다.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오자마자 거울을 보니 내 이마엔 언제인지 모르게 내천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입꼬리는 아래로 쑥 내려와 입 다문 송편이 내 입술 인양 보였다. 표정이 없고 얼굴은 네모지고 대충 그랬다. 그래도 어릴 적엔 깔깔대고 웃기도 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신나고 즐거운 때도 많았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하는 동안 내 얼굴은 점점 나빠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약사는 내 마음을 내가 약국에 들어서는 순간 알아차려 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의 일그러진 얼굴은 나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주변에는 나와 같이 하려는 친구도 없고, 남편도 가족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일에만 빠져 있어서 나의 외로움은 저 깊은 곳까지 자꾸만 밀고 들어가고 있었다.
끝을 박차고 일어나려는 찰나에 약사를 만난 것일까. 아님 더 이상 깊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딱 맞춰 그 약사를 만난 것일까.
난 그날부터 오래된 나를 떠나기 시작했다. 매일 거울 앞에서 "좋은 마음이 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서 웃는 연습을 했다. 굳어진 입꼬리는 쉽사리 움직여 주지 않았다. 굳은살이 뺨을 누르고 있어 쉽게 풀릴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연습하기를 매일 반복했다. 친구를 만나려고 대문을 나설 때도 "좋은 마음이게 해 주세요."를 기도했다.
그래서였는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던 고정화된 나의 생각들은 점점 네모가 세모가 되고 세모에서 다시 동그라미가 되더니 요즘엔 많이 평온한 상태다. 아직도 동그라미가 다시 세모나 네모가 될 때가 없진 않지만, 그 약사를 만나던 당시의 뾰족뾰족한 부분은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었다.
내 마음이지만, 나 스스로가 얼르고 달래서 살아야지 생긴 대로 막살다가는 마음님이 화가 나서 급기야는 완전히 방전이 될지도 모른다.
찰흙을 말랑말랑 해질 때까지
만지작만지작하듯이
10년을 주물딱주물딱했더니
요사이는 참 살기가 보드랍다.
오래전 일인데 그때 갔던 약국의 약사는 약만 팔지 않았다. 마음공부하는 법까지 가르쳐 주었으니 그 약사는 약값을 두배로 받았어야 했다.
바보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