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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Dec 21. 2016

인턴의 애환

그랬겠다

 요즘엔 학교 대신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학업을 이수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얘기를 딸을 통해서 들었다. 왜냐하면 딸애가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이 한 번에 연결되기는 하지만,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하고 그다음엔 도서관에 가서 앞으로 제 할 일을 위해 또 공부를 한다.


 처음에는 희망에 찬 얼굴로 출근할 때 입을 옷도 사고, 나름대로 상기된 얼굴이더니 며칠 전 한 학기의 과정을 마치고 집에서 좀 쉬느라 있는 딸의 얼굴엔 여드름이 한가득이다. 쉬고 있으니까 하루하루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보면 그동안 무던히도 고단했나 보다.


 신입이라 어깨에 힘들어가야죠, 거기다 누구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정식직원들은 야근을 하고 있는데 나만 퇴근해도 되는 건지, 아침을 대충 먹고 간 날은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출출해지는데 간식을 먹어도 되는지, 차는 마셔도 되는지, 화장실은 어느 시간대에  가야 하는 건지 뭐든 다 어색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일이  많다 보니 당연히 힘이 들어가고야 말았겠다.


 제가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고 싶어서 도서관으로 학교로 다니고는 있었지만, 때론 걸으면서 저녁을 때우고 책을 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이 오고, 그래서 그저 시간만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날엔 내가 뭐하면서 살고 있는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겠다.


 학비는 학교에 내고 회사에 다니는데 약간의 교통비가 정부에서 지급된다는 것 같기도 하고 애들 일이라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는 중에 애 아빠는 네가 번 돈으로 학비 내면 되겠네 하더니 막상 일을 마치고 나니 그동안 모은 돈은 네가 유용하게 쓰도록 해라 하고 돌려주었다.  그러자 딸은 뛸 듯이 기뻐하며 엄마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1인용 책상을 사 주어 잘 쓰고 있다. 아빠와 엄마에게 맛사지권을 결혼기념일 선물로 주겠다고 날 만 잡으라고도 한다.

딸이 선물해준 1인용 책상. 소파에 앉아 사용할 수 있어서 작업이 훨씬 편해졌다.

 인턴으로 살며 겪은 고생이 아이를 강단으로 키웠을까 아니면 엄마가 맨날 집에서 놀기만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저 혼자서 학교 기숙사에 갈 것을 계획했는지 내일은 들어간다고 여행용 가방을 빵빵하게 채웠다.  엄마인 나와 아빠가 그 애에게 눈치를 줬을까 그렇지 않으면 수험생으로서 살도록 예우를 해 주지 않고 분리수거해라, 설거지 해라, 커피 타 줘라, 청소기 좀 돌려라 하며 쉬는 날도 쉬는 게 아니게 해서였는지 갑자기 기숙사로 가겠다고 통보를 하니 엄마로서 놀랄 수밖에.


 이런 날 하필 창밖에는 밤비가 봄비인 듯 후적후적 내린다.


 자식이 셋인데 하나가 들어오고 둘이 당분간 집을 비운다. 한동안 집에는 세 식구만 살 것 같고 이제 한 해 두 해 지내다 보면 점점 아이들의 빈자리가 생겨 나겠지.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서 취직도 결혼도 하고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들 그러는 게 정답이라고 하니까 별 수 있겠나.


 그럴 줄 짐작도 안 했는데 어깨에 힘 꽉 주고 야무지게 인턴과정을 마치더니 가방을 싸가지고 기숙사로 향하는 결단이 멋져 보이기도 하고 단단해 보이기도 한다. 비록 이차저차 해서 대학생활 기간이 길어진 것은 있지만 그러는 동안에 몸도 마음도 커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도 한다.  겨울 동안 기숙사에 칩거하며 자신의 새날을 위해 집중적으로 뭔가를 해낼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빽빽한 지하철 틈을 비집고 출근하던 당당한 몸가짐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겠다는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경직된 사회 초년생의 시절을 나이 들어 떠올리면서 그 날을 추억할 날도 있겠지.


 깊이 쌓인 피로가 다 풀리기도 전에 다시 짐을 싸서 떠나는 자식 앞에서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조용히 바라봐 주는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겠지. 속으로 응원해 주고 또 응원해 주는 게 더 좋겠지.


 오늘 내린 비가 혹여 눈이 될지도 모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려나.  어쨌든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아 오면서 인턴 하느라 턱에 여드름이 뻑뻑 난 내 딸에게도 새 봄, 따뜻한 봄이 와 줬으면 좋겠다.  수고했다. 내 딸아. 네가 회사에 가서 한 일이 작게 여겨지더라도 그런 생각은 말아라. 매일 제시각에 출근하고 꼬박꼬박 출근 도장을 찍으면서 너도 모르게 배우고 익힌 것이 무수히 많단다.


 그 동안의 수고로움이 너의 훗날을 더 견고하게 해 주는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고 또한 멋진 경험의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야.

참 잘 해냈구나.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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