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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Jun 05. 2018

찰리 찰리

내가 다 가지고 갈게

 남편은 친구들과 1박 하러 가고, 아이가 셋이나 있어도, 주말이라고 다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평소 친한 왕언니네 아들  결혼식에서 맛난 것도 잔뜩 먹고,  카페에서 빙수를 놓고  한참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랬는데도 우리는 헤어지기가 싫었다.  그건 아마도 횟감이랑 과일이 풍부하게 있는 ㅇㅇ언니가 바람을 불어넣어 더 그랬을 것이다.  자외선이 눈을 뜨지 못하게 강렬한 유월 첫 주말에  길가에 서서 하작대는 미루나무의 유혹에, 집에서의 주말 오후는 다 별로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ㅇㅇ언니가  "내가  맛있는 것 가지고 갈 테니 장소만 제공해 줘 " 그런다.  "응.  언니.  청소상태는 꽝이니까 선글라스 안 쓴 사람은 입장 불가야. " 깔깔거리는 우리는 그게 오케이 신호라는 걸 알아챘다.  "그럼. 지금 헤쳐 모여서 다섯 시에 다시 만나요. " 동호수를 자세히 알려주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30 °C가 넘는 날씨가, 오자마자 샤워부터 하게 했다. 대충 정리되긴 했지만, 가끔씩 솜방망이가 보이고 쓰레기 버리다 흘린 물자국이 새까매져서  후딱 청소기도 돌리고  까만 때는  물휴지로 닦아냈다.  물론 화장실은 샤워하면서  적당히 청소를 마치기도 했다. 창문을 다 열고 친구들을 기다렸다. 버리려던 베개가 문 앞에 있는데, 둘째가 제일 나중에 나가므로 버려 달라고 했지만, 약속시간이 아직 안 됐는지 미적댄다. 아가씨가 잘 차려입고 낡은 베개를 들고나가는 건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내가 들고 딸애와 같이 나갔다.  베개를 의류함에 넣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고와 보여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면서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내 친구들이다.  활짝 웃으면서 " 딸이 예쁘다.   이제 아가씨가 다 됐네. " 그러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느라 소란스럽다.  다들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주말의 파티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현관을 들어서자, 우린 다 같이 모자도 벗고, 외투도 옷걸이에 걸었다.  난 사실 준비된 게 없었다.   날은 더운데 어쩌나 하다가 어제 청국장을 만들려고 흰콩을 삶다가 너무 오래 걸리고 해서 그냥 훅 갈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콩물이 있었다. 그걸 한 잔 하면  더위가 식을까 하고 주니까 당장에 된장냄새가 난다고 지청구다.  ㅇㅇ언니가 수박을 가져오긴 했지만,   시원하지가 않다기에 내 집의 걸 통째로 내놓았다.   수박으로 더위를 달래려는지  숨도 쉬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얼추 열기가 식자, 그때서야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있었다.


 ㅇㅇ언니가 심지어 마늘 ,  상추까지 준비해 와서  그저 펼쳐 놓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상은 금방  제대로 된 면모를 갖췄다.   집에는 지난번 울릉도 갔을 때 사다 놓은 마가목주가 있어 한 잔씩 하면서 주말 오후의 흥을 즐겼다.   수다가 겸상을 해서인지 두터운 횟감은 술과 어울려 더 쫄깃거렸다. 횟감의 냉기가 식을라치면 냉동실에 잠깐 넣고 다시 시원해지면 꺼내서 먹고, 그러자니 이제는 더는 못자시게 될 때가 왔다.   친구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국수물을 올렸다. 물이 끓자, 기름  한 방울과 소금을 넣고 거기에 손가락으로 두 움큼이 못되게 국수를 넣었다.   딴짓을 하다가 맛보니까 찰지다.

바로 찬물에 헹구어 익은 배추김치와 들기름을  뿌려 조금씩  나눠 상에 올렸다.   더는 못 먹는데 준다고 난리다.   어쨌든  저녁식사 갈음.

성품 좋은 친구들은 뒷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주어

우리는 자리를 옮겨 편히 쉴 수가 있게 되었다.


 캐모마일을  준비해 나의 독서대가 있는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요즘 보고 있는 박광수 님의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을 펼쳐 읽기로 했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캘리그래피 글씨가 있고,   그림이 많은 책이라 읽기 편하고 낭독하기에도  적절해서 자기가 펼친 자리를 한 바닥씩  읽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처음부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가까이도 보고 멀리도 보고 하더니  찬찬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찰칵! 찰칵!

ㅇㅇ                    찰칵!



"오늘 제가 사진기의 셔터를 백 번 누를 테니  백 번만 웃으세요.  엄마."

이 대목을 읽어야 하는데  느닷없이 "오늘은 찰리 찰리 찰리 찰리 찰리 찰리~~"

"여기서 찰리 찰리가 도대체 뭐죠?" 그런다.   이상하다 싶어  책을 들여다 보고서야 친구가 찰칵 찰칵을 찰리 찰리로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광수님이  치매에 걸린  노모의 웃던 모습이 보고 싶어 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웃는 모습이 하나라도 나와 주려나 하는 마음에서, 반복적으로 백 번씩 셔터를 누르는 장면을 연상한다면, 그리 웃어서는 안 되는데, 친구가 "찰리 찰리 찰리 찰리" 그러는 바람에 우리는 바닥을 뒹굴며 눈물을 쏙 빼가며 웃어댔다.  돋보기를 빌려쥤음에도 도수가 맞지 않아, 겨우 한 바닥을 읽어냈다.  나머지 사람들도 돌아가며, 다들 목청도 가다듬고, 제 속으로 멋들어지게  읽어 내려고 애를 썼다.  돋보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진땀을 흘려가며 끝까지 읽어냈다.  


 새로운 발견도 아니긴 하지만, 우리는 언제 우리도 모르게  나이가 든 어른 축에 속해 있었다.  그래도 어쨌건 한나절을 유쾌하게 보냈다.  우리는 광수님의 말처럼 일부러 행복한 척도 말고,

                      일부러  잘난것처럼 보이려고도 말고, 

                 일부러 센 척도 하지 말며,

                     그저

내 그대로의, 그대로  살자는 생각에, 지금의 처지가 한껏 의지가 되고  힘이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 한나절의 만남으로 다음 여행 때는 찰칵 찰칵을 찰리 찰리로 하기로  했다.  우리들만에게 생긴 찰리 찰리의 기억은 다른 사람은 이해 못할 비밀이 되었다.


언니~~~

찰리 찰리(치즈~~^^김치)~~~



돋보기로라도 볼 수 있다는데  감사하며, 우린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며 헤어졌다.

눈빛은

모두

생글거렸다.

찰리 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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