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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Mar 19. 2018

31년 만에 생긴 일

꽃밭에 앉아서


  한 남자와 어리바리 여자가 만나서  연애라는 것을 하다가 얼떨결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생글거렸지만 점차 시작과 나중은 색깔 자체가 아주 달랐습니다.   


 결혼 전

차 마시러 갈까요?

영화 보고 싶으세요?

예쁜 카페에서 만나기

공원에서 데이트하기

퇴근 후 짬짬이 만나기

선남선녀


 결혼 후

3박자 커피 집에서 마시기

주말의 명화로 갈음

집은 곧 카페

주말에도 집.  집

늦은 밤까지 일하고  견우직녀 만나듯 하기

둘만의 시간 거의 없음



 그 외에도 달라진 점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날이 갈수록  내게도 숨통이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남편은 나가서 회사라는 밭을 일구고 살지만, 나는  아이도 키우고 남편과 어우렁 더우렁  한다고는 하여도 나름으로 뭔가를 이루어 내려는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나만의 소일거리로 화초를 기르기로 했습니다.



 한 번은 바이올렛을 이웃 동생이 알게 해 줘서 키웠는데 겨울을 지나고 나니 촉이 새로 숱하게 생겨 났습니다.  일일이  갈라서 심으면 잘 자란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두 해,  세 해가 지나자,  베란다는 바이올렛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묘한 빛깔을 지닌 꽃들이 쏙쏙 피어오르니 입가에 나도 모르는 탄성이 생겨 났습니다. 바이올렛은 동향집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잘 자라 아침햇살에 어슴프레 살갗을 드러내는 그 꽃들을 보면서 나도 뭔가 큰 세상이라도  이뤄낸듯 기뻐지곤 했습니다.  사랑받던 어제의 꽃은 점점 사라지고 어느 사이 염좌에 꽂히고  또 그러고는 이런저런 사랑에 빠지곤 했습니다.



 속상하게도 나의 소일거리에 남편은 대 짜증을 냈습니다.  이유인즉슨 꽃 하고 놀 줄만 알지  뒷정리를 잘 할 줄 몰랐기 때문이랍니다.   정리 박사인 남편은 내 꼴이 싫었나 봅니다. 꽃이라는 게 하루라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샐쭉해지는 것을  꽃을 가꾸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래서 물도 주고 이른 아침부터 부삽으로  쑤석쑤석 화분을 매 주기도 하고 못생겨진 이파리를 따주고 하면서  몰래 귀밑까지 웃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웃사람들이 놀러 오면  보여 주면서 자랑도 삼았습니다.   서로 제 집 꽃 자랑에  열성으로 키우는 점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오후였습니다.  그날도 베란다에서 뭔가 투닥투닥 손질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또 와서 잔소리를 합니다. "그렇게 열성으로 하면 뭐해.  마무리가 좋아야지. "

 그날 나는  생리증후군으로 온몸이 고단할 대로 고단한 때였습니다. "알았어. 알았어. "

그리고는  앉은자리에서 곧장 일어나 화분을 패대기쳤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놀란 남편은  내 팔을 붙들고 말렸습니다. 

 " 그래.  됐어. 집에서  내 맘대로 하는 게 이거 말고 뭐가 있어.  나도 사람이야.   그만 좀 볶아 먹어.  좀 지저분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꽃  키우는 게 뭐 공산품처럼 딱딱 줄지어 똑같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정말 지나친 거 아니야? 당신은 당신 스타일이 있고,  나는 나만의 사는 방법이라는 게 있잖아. 정말 해도  너무하네.  이러다 죽겠다. 죽겠어.  나도 살아가는 게 고단 하단 말이야.   숨 좀 쉬고 살자.   숨 좀 쉬고 살아. "



 나의 볼멘소리에 당황했는지 남편은 새로운 화분을 사다가 흩어진 화초들을 얼렁뚱땅 심어 놓았습니다. 화분들도 맘에 들지 않고,   정나미가  떨어져서  화초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밖으로만 나돌다 보니 어느 날 창문을 열어두고 영하 17도의 추운 날씨가 왔는데도 깜빡했나 봅니다.  하도 춥길래 베란다를 내다보자니  정말이지 큰일이 났습니다.  그 약한 것들이 그만 죄다 시커멓게  누워 있는 것입니다.



 혹여나  새싹이 올라오기나 할까 하고 이 봄까지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지금껏 베란다는 나만 보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결코 나만의 베란다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주말에 꽃 사러 가자. "라는 남편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휴일에  외곽으로 나가 꽃들을 사게 되었을 때  남편은 뭘 살까를 물었습니다.  제라늄 하나만 고르고는 모두 남편이 재량껏 하게 두었습니다. 우리들 하는 짓을 지켜보던 어떤 할머니가 "왜 꽃을 안식구가 골라야지?"하고 물으십니다.  "아. 31년간 제가 골랐으니 이번에는 남편에게 기회를 주려고요. "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는  할머니는 우리네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베란다에 가지런히 꽃을 심어 정리하는

 남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였습니다.

 물을 쭉쭉 뿌리면서

 청소에 전념하는 모습에는 뭔지는 모르지만,

 싹싹 씻어내는 것이 있겠구나 싶어 보였습니다.


 



 그동안 잘 모르는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화초를 기르면서도, 자식을 키우면서도,  이웃과 만나면서도, 형제들과 지내면서도, 남편은  서로 상의하고 동참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뒷정리를 잘 못해서 미운 것도 있었겠지만,  혼자만 노는 아내를 참견한 점도  있었다는 발견입니다. 좋아서 만나 결혼이란 걸 하지만, 무엇이든지 다 처음인 우리는 매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지금 베란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꽃들은 이제부터  남편의 정성으로 키워지도록 한

발 뒤로 뺄 생각입니다. 가끔씩 관심도 좀 보이면서~~


 31년 만의 발견.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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