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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Jul 03. 2018

창조주를  믿나이다

반성문

 꽃의 언덕에서 주르륵 미끄러지며  하이디가 내려올 것 같았다.  꿈에 그리기만  하던 스위스 땅에 발을 딛었을 때의 감동은 내게 "너는 창조주를 믿느냐?" 하고 누가 묻는다면  " 예. 저는 창조주를 믿나이다. "  하고 바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서게 했다.  가슴 안까지 다가오는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작달막한 꽃들의 합창, 설산이 겹쳐 보이는 레만호의 도도함.



 가기 전 엉켜 있던 마음은 삽시간에 눈 녹듯 녹아버렸다.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이라 두려움도 컸고,  유럽이라는 먼 거리로의 여행을 가족과  동행하지 않고 떠나는 것이 맘을 복잡하게 했다.  이번만큼은 집을 떠난다는 것이 죽는 연습, 종착역으로 떠나는 한 과정은 아닌가 하고 속으로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행을 가서 살펴보니까 다들  각 개인이 온 건 나와  입장이 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아름다운 스위스의 산천은 나의 모든 경계심을 풀어 버렸다.  곳곳에 펼쳐진  들꽃의  향연은 안개비가 자욱한 니기산 자락에 온통 펼쳐져 있었다.  산악기차를 타고  오르는 내내 사람들은  " 와와~~~" 연신 신음하듯  놀라워했다.


 이국적인 정경들,

 다소 감당이 어려운 현지식,

 여러 나라 사람이 모인

  관광의 나라 스위스는 다 예뻤다.


 온천욕을 하고 같이 간 일행들과 재미나게 물놀이도 하고,  여기저기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자동판매기처럼 정해진대로 가이드가 가는 쪽으로만 따라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레만호에 가는 날 아침에는 특별히 원피스를 차려입었다.  왠지 근사해 보이고 싶어서였다.   이유인즉슨 아주 오래전 <레만호에 지다>라는 드라마에서  배우 정애리씨가 바바리코트를 입고  호수 저 끝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그녀는 그때 한 공산당 간부 역을 맡고 있었다.   공산당이라면 무조건  오금이 저리던 시절이었는데도  그 모습이  너무나 고독해 보여서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아름답기만 했다.   내가 언젠가는 저곳에 서 보리라 하고 마음만 먹었던 곳인데, 그게 현실이 되었으니  원피스 정도 차려입는 것은, 동경해왔던 한 장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정도에 속하리라고  생각했나 보다.   스카프 하나를 더 해서 제 멋에 겨운 여행의 진수를 즐겼다.


 5박 7일의 여행 중 넷째 날이었을 것이다.    그 날은 비가 내렸다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짝꿍과 둘이서 마테호른을 보겠다고 샛강을 따라 올라갔다.  난 외국어라면 소름이 끼치는 사람이지만,  짝꿍은 달랐다.  키도 크고 코도 높은 사내에게  저기가 마테호른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거기는 뒤쪽이라며 돌아서 가야 정면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우중에 어렵사리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우산을 켤까 했을 때 해가 삐끔 비치기 시작했다. 다시 산악열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가는 곳마다에서 우리는 또 소리소리를 질렀다.  

성냥갑처럼 놓여진 집들,

몸을 내려놓은 삼나무,

초원과 대비되는 설산,

열차에서 내리자, 마테호른은   구름 치마를 입고 있어서 좀처럼 제 모습을 보이려들 질 않았다.  듣기로 아주 맑은 날에나 볼 수 있다고 했다.  


 내려올 때는 걷기로 했다.  눈앞에는 설산과 빙하가 있는데, 우리가 걷는 발길 사이에는 이제 싹이 튼 에델바이스와 진한 보랏빛의 알 수 없는 꽃,  여러 가지 다육이 식물이 땅에 딱 붙어서 자라고 있다니 신기할 뿐이었다.  거기다 집채만 한 눈무덤 밑으로는, 강한 힘을 자랑하는 켈트족 전사들의 군화소리처럼, 저럭저럭 소리를 내며, 눈 녹은 물이 흘러내렸다.





 사람들은 걸으면서 마테호른  꼭대기를 담아 보려고 기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그때  산 위로 펼쳐진 하얀 구름과 바다보다 진한  빛깔의 하늘은 곧바로 내게 반성문을 쓰게 했다.






" 저는 창조주를 믿나이다.  

가족들에게 볼상 사납게

까칠하게 굴고

여행을 떠나 왔습니다.  

창조주여!

늘 부족한 저를 용서하소서.

진실로 장엄한  천지 앞에서

당신의 천지 창조하심을  

믿고 또 믿나이다.


제게 삶의 지혜를 주시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총명과 건강을 허락하소서!

꿈의 나라 스위스에

올 수 있는 복을 제게 내리셨으니,

저도  세상에  이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창조주여!

진실로 부끄러웠던,  

작고 또 소심했던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세상 앞에  멋진 한 사람으로  

잘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장엄한 삼라만상 앞에서

저절로 뉘우침과 기도가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가까이 같이 지낸

열 명의 일행들에게서는

단합. 양보. 배려. 아낌. 보살핌. 사랑을 배웠으며,

조금도 모나지 않은  그녀들의 어짐에

여행은 내내

그 맛을 더 했다.



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반성문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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