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이쁜 아가야
사는 곳에서 공항 쪽으로 조금 가면, 베트남 음식을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하는 데가 있다. 이번 달은 나의 탄생 월이기도 해서 모임에서 그 집엘 큰 맘먹고 갔다.
넓고 쾌적한 장소에 음식은 알록달록해서 기분조차 화사해졌다. 한숨을 돌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전체 분위기를 음미했다. 이번은 내 생일이니까, 우아하게 밥 한번 먹어볼까 하고 접시를 들고 윤기가 자르르한 초밥 앞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앞을 막으며,
ㅇ " ㅇㅇㅇ씨 아닌가요?" 그런다.
ㅍ" 어~~ 누구시죠?"
ㅇ"..........."
ㅍ"어~~~~ 서ㅡㅡㅡㅡㅡ. 안녕하세요? 친구분들이랑 놀러 오셨나 봐요. 그럼. 퇴직은 하신 건가요?
ㅇ"퇴직했지요. "
ㅍ"이 근처 사시나요?"
ㅇ"예. ㅇㅇㅇ씨는 ㅇㅇ에 살지 않나요?"
ㅍ"예. 저는 ㅇㅇ에 살고 있어요."
ㅇ"아! 그렇구나. "
ㅍ"예. 그럼 잘 놀다 가세요."
옛날에 직장에 다닐 때 남편에게 밉상 언니라고 늘 흉보고 미워했던 직장 상사를 만났다. 만나는 순간 그 언니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소심한 복수를 했다. "서ㅡㅡㅡㅡㅡ." 성씨만 말하고 그다음은 모르는 척했다. 30년이 다 된 지난 일인데도 그 언니는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확실히 알면서도 뒷꼬리를 흐렸으니, 그 언니가 볼 때는 내가 총기가 없어서라고 단정 지을 수도 있겠다. 기분이 묘해서 밥을 먹으면서 같이 있는 이들에게 그 언니 흉을 잔뜩 봤다.
난 아직도 속물 중의 속물인가 보다. 따발총으로 할 말 다하고 나를 정당화하려고 애를 썼다. 일행들이 같이 동조는 해주었지만, 이 사람 참 골치 아픈 사람이네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10년을 근무했는데 유독 베트남 음식점에서 만난 그 언니만 너무도 불편하고 미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대로 상대가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 언니는 높은 양반들에게는 " 네네네" 그러고 우리들에게는 쌀쌀맞고 표정도 굳어있곤 했다.
정말 밉상이었다.
요즘엔 직장에서 평면으로 일하는데도 많아졌다고 들었다. 호봉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협업을 한다니 멋져 보인다. 위에서 억압하고 아래에서는 불만이 꽉 찬 직장형태는 아무래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수평관계로의 회사 분위기라면 더 따뜻해 보이고, 끝내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모를 일이다. 내가 미워한 저 언니가 내 아이들 상견례 자리에 시어머님이나 장모님이나 아니면 사돈댁 친척쯤으로 등장할지도.
그래서 올 때는 그 언니가 어느 테이블에서 식사 하나를 찾아보고, 맛있게 드시고 가라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녀의 표정도 좀 떨떠름해 보였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마음 정리도 되고 평안해져서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게 맞곤 하는데, 그날의 만남은 참 생각 외로 기분이 별로였다. 철없던 시절의 매끄럽지 않은 관계라든가 처신, 이런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온몸을 오싹하게 했다. 지나온 날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참 그때는 왜 그리 편협했었나 하고 얼굴을 감추고 싶은 맘까지 든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순간을 곱게 살아낼 필요가 있구나 하는 것을 이번 일로 다시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그 언니는 내가 자기를 미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만 혼자 자격지심에 그 이름을 30년이나 기억하고 있었다니 이제는 털어버려야겠다. 그리고 혹여 다시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면,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언니를 되게 미워했었노라고 말하고 화해를 청해 보려고 한다.
이제는 내게 미운 사람이 진짜 없는 거겠지 했었다. 아무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날 만난 언니에게 그렇게 큰 억하심정을 가졌다니 새로운 발견이다.
아가야.
내 속에 숨은 미움 아가야.
이제는 내게서
저 멀리로 떠나렴.
아가야.
이쁜 아가야.
이쁘게
이쁘게 살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