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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Apr 22. 2020

뜨개질 미학

코로나 19가  준  선물

 1. 궁금하면  배워라-신세계가 열린다

 이웃들에게 자주 맛난 음식을 해 놓고  불러주는 동생이 있다.  그녀의 집에 가면 뭔지  늘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집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어 이모저모 애쓰는 티가 난다.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띈 것을 들라면 창가에 드리워진 곱살스러운 커튼이다. 손으로 뜨개질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려운 것을 어떻게 떴을까 대단하다고만  생각하고  몇 해를 그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 19라는 경험해보지 못한 바이러스의 침공으로 집에서 근신하던 에  이번에는 같이 어울리던 다른 언니가 여러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했다.  가는 길목에는 봄꽃이 온통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마스크를 하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집안에 들어섰다. 어머나 이건 뭔가.  그 언니의 집에도  이웃 동생집에서 보았던 모양의 커튼이  걸려 있다.  무슨 일인지를 물으니 커튼 만든 원조는  따로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니가  아주 가느다란 실로 뜨개질한 것을  식탁에  깔아 놓았길래 물으니 젊을 때  남편은  외국에서 근무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이런 걸 떴다고 했다.  난 이미 시력도 그렇고  해서  엄두도  낼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긴 해도 커튼은 어떻게 뜨는 건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도면도 보여주고 최근에 자신이 뜨던  샘플까지 가지고 나와서 설명해 주었다.  차도 마시고  이런저런 간식도 먹으면서  모처럼의 만남이라 요즘의  어려운  속사정도 얘기하다 보니  한참 만에야 헤어질 수 있었다.  샘플을 들고 가라고 빌려주기까지 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커튼 뜨기를 시작했다.   


  2. 계획하고 실행하라 - 무턱대고 가다가는 그냥 도로아미타불이다.

학창 시절에 배운 기초 력으로 해마다 모자 한 개나  목도리 정도는 떠봤지만, 이번처럼 다양한 문양이 들어간 뜨개질은 처음이라 그간의 습관대로  떠  나가기 시작했더니 이건 도대체가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게 없다. 뜨다가 풀고 이제는 제대로 되었겠거니  하고 또  떠 나가다 보니 시작부터 한 예닐곱 번은 풀고  고를 해야만 했다.  기초가 제대로 된 것을 보면서 그제야 다소간의 만족감이 들기 시작했다.   


 3. 실행 후 반드시 뒤를 돌아보라 - 바로 돌아보면 실수를 재빨리  찾아내고 수정할 수 있다.

  만족감에 짓던 미소도  잠시다.  한 줄을 뜨고 다시 돌아서 또 한 줄을 잘 됐으려니 하고  뜨다 보면  내가 알지 못한 곳에서  또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 참!" 하고 두 줄을 한꺼번에 뜯어보라. 그만 뒤를 살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막급이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 일이 다소 더디게 진행되더라도  내가 한 일을 보고 또 보고  뒤돌아보아야만  실수를 줄여낼 수 있다.  왜냐하면 무슨 일이건 처음 하는 일에 관한 한 그 분야에선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초보이기 때문이다.


 4.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 과감하게 풀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면  바늘허리 맨 것보다는 훨씬 제대로 갈 수 있어서이다.

 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아무리 찬찬히 해도  저만큼 진도가 훅 나갔을 때에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잘못된  부분을 발견할 때도 있다. 그대로 가다가는 작품이 완전히 망가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  그것이 아까워서 그냥 앞으로 나간다면  그  물건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미련없이 과감하게 풀어버리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  그 당시에는  아깝고 낭패롭기 이를 데 없는 일이겠지만, 사실 먼 미래를 위해서는 최상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 하나 둘 숫자를  세면서  뜨개질을  하고 있다 보면 요즘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가 떠오른다.   그것이 핵심이다.  

 취미생활이긴 하나  그것에 몰두하다 보면  내게  정말 필요한 마음 정리할 일이  떠오른다.   어찌 보면 뜨개질도 명상의 한 모양새일 수 있기에 그렇다.  이번 코로나 19와 같이 예기치 못한 사태 앞에서 고단하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을까.  뜨개질을 하고 있다 보면, 어찌하면 이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를 경솔하지 않게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명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일을 보자면, 그것은 누군가가 겪었을 전쟁일 수도 있고, 기아일 수도 있고, 홍수나 화재 또는 병충해로 한 해 농사를 다 망친 경우일 수도 있고,  지나 소, 닭 등이 폐사되는 어려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게만 유독 아무런 고통도 없는  세상을 바라는 것은  이미 오만이고, 겸손하지 못함임을 이런 일로 우리는 알아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다가온 고통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나앉는 것보다는 지혜를 모으고 모아 잘 대처해  나가는 것이  멋진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그러니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볼 일이다.   


 6. 시행착오가  번복된다고 너무 짜증 내지 마라 - 만 번을 하고 났더니 그제야 그림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적잖이 나이가 들었다고는 하나 커튼을 뜨고 있는 동안 너무도 많이 풀고 또 풀어내야만 했다.  왜 이리 자꾸 틀리는  것일까.

단순작업이라면 그나마 실수가 좀 덜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처럼  단계가 높은 경우일수록 그 일이 빨리 숙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래서 고부가가치를 지닌 상품이나 서비스들이 대접을 받고 비싸게 팔리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뜬 커튼 정도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웃을 수 있겠지만,  내 선에선  정말로 어려운 일에 속했으므로 좀 과장되게 표현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몇 날 며칠을  고군분투한  끝에  진짜 같은 실수를  만 번쯤은 했나 싶다. 그러고 나서야 전체 그림이 그려지다니 굼뜬 내 품성에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랬어도 결국엔  되더라 하는 이다. 만 번 하고도  안 되면  그때 포기해도 늦지 않는다.   이미 되는 일이 어  있을 테니 말이다.   

                      평소에 만든 것



 7. 마무리 단계에서 지나치게  성급하게 굴지 마라 - 달아보고 조여보고 결정하라.

  뜨개질에 매료되어 있다가  얼른 완성하고픈  욕심에 계획했던 길이만큼을 다 떴을 때,  혼자는 길이가 너무  길어  어쩌지를 못하다가 퇴근해 쉬고 있는 남편을 동원해  길이를 쭉 늘여서 재봤다. 나름대로 자로 재서 떠 왔는데 이상하게 1미터도 넘게  남는다. 그래서 다 풀기에는 족히 한나절은 걸릴 것 같아 생각한 게 가위로 자른다였다.

싹둑 자르고 봉에 끼워서 걸었다.  가족들은 우물딱 조물딱 하길래  뭐하나 했더니 정말 멋지다고 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도 않아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뭔지 끝부분이 잘라낸 만큼 서운한 것 같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 하루 종일 한순간에 잘라내 버린 1미터도 넘는 만큼을 만회하느라 죽도록 고생해야만 했다.  그건 재미가 아니고 고생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때때로   어떤 일을 할 때  성공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일껏 달리다가  자칫 마무리  단계에서 성급해지기 쉽다.  시작도 중요하고  과정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단계이지만  일의 끝자락에서 보다  촘촘한  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걸기전의 커튼




 8. 일을 시작하게 해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라 - 어떤 일이든 처음 그 일을  시작하게끔 마중물이 되어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했을 때 더 많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커튼 샘플을  건네준 지인에게 완성작을 사진으로 보냈다.  제대로 된 것인지 물었을 때 정말 잘했다며  커튼봉에 끼는 부분까지  멋지게 해냈다며  극구 칭찬을 한다.  재주가 좋다고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동안 도를 닦았다고 했더니 당신 고단했던 얘기도 하면서 내  걱정도 많이 했다고 한다. 우린 그래서  서로의 아픔도 나누고, 또한 가르쳐줘서  고마우니 이 사태가 진정되면  밥 한 번 사겠다고 했더니,  별말을 다 한다며  나의 스승(?)님께서 좋아라 한다. 그래서 나도 함께  기뻤다.


  9. 매사에 감사하라- 우리에게 온 시련이  내게 더 큰 가슴을 가지게 할 것이다.   그러니 매사에 감사하라.

 여행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우리 집에도  불행 바이러스가 급격하게 달려들었다. 살면서 시련을 서너 차례 겪긴 했지만,  이번처럼 막막한 경우는  없었다.   온 가족이 머리를 싸매고 생각을 나누고 또 나누었다. 그러는 중에 배우 양희경 님이 한 극에서  말한  " 오늘 일기장에  쓸  말이  없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라는 목소리가 너무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고단함이 있지만, 지금 내 몸은 성하고, 내 가족들도 별  탈이 없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란 말인가.  우리는 때때로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모르고 산다.  지금과 같이 하늘이 높고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날 그것을 볼 수 있는 눈과  가슴이 있음에도 말이다. 이번의 시련이 어떠한 형태였든  아마도 우리의  가슴을 좀 더 따뜻하고 견딜 줄 아는  모습으로  변화시켰을 것이다.  


 춘삼월은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니,  따사로운 춘 오월이 오거든  새처럼 나는 가슴으로 살 일이다.


  이것으로 뜨개질 미학을 풀어서 정리 마칩니다.


                             완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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