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이유로 보자면 복식으로 네 명이 조를 이뤄 치니까 그 움직임이 맘에 들어서였을까.
또 그것에 더해서 끝나고 사람들과 하는 뒤풀이 때문일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까닭이 있어서이겠지만, 더 특별한 이유를 들자면,
첫째는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고
둘째는 주말에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기쁨이 있고
셋째는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넷째는 자주 웃을 일이 생겨서 이기도 하다.
코로나 19로 세상이 뒤숭숭해도 어김없이 주말은 왔다. 나름대로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면서 서너 명만 빠지고 다들 모여서 재미나게 각 테이블에서 치거니 받거니 하면서 놀았다. 중간에 누가 간식도 준비한다고 하니 그것에 대한 기대도 되고, 하여간 직장에서 쉬는 사람, 나처럼 쉬는 남편하고 같이 운동하는 사람, 등등이 모여 다들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 역시 이 팀 저 팀 바꿔가며 즐기고 있던 차에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하는 한 팀원이 내 파트너가 되었다. 그는 나보다는 많이 젊은 회원으로 동작이 크고 그야말로 남자다운 폼으로 운동을 한다. 거기다 그는 늘 회원들을 코치하던 사람이라 나와 팀이 되어서도 이래라 저래라를 했다. 운동 중이라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듣겠고, 슬쩍 불편해졌다. '왜 이래야 하지.' 싶기도 하고 찜찜한 기분에서 탁구를 치고 있는데 그 회원에게 때마침 공격 찬스가 왔다. 그가 공격을 하자, 휙 하고 공중으로 뜬 라켓이 탁 하고 내 한쪽 얼굴을 베어내는 느낌이 났다. " 엄마!" 하고 얼굴을 부여잡고 한참을 있으려니 스무 명이 넘는 회원들이 전부다 운동을 멈추고 무슨 일인지를 살폈다. 한쪽 볼이 떼어져 나간 것 같아 꼭 붙잡고 있던 손을 쬐끔 열어 보았다. 생각보다 심한 건 아니었지만 금세 광대뼈 주변에
길게 한일자로 시커먼 멍이 들어 있다. 다들 어쩌나 걱정하고, 웅성웅성하고 있고, 무슨 연고를 발라야 하는지 당황하고 있을 때 남편이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얼마 되지 않아 2층 당직실에서 냉찜질팩을 가지고 돌아왔다. 찬 것을 가지고 있던 수건에 싸서 얼굴에 대주었다. 그것을 붙들고 고개를 들어보니 회원들은 다들 얼음땡이 되어 있다. 그때서야 제정신이 들어 "괜찮으니 게임들 하세요." 했더니 영화 필름은 좀 전처럼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 남편에게 궁시렁도 거리고, 서로 너는 못났고 나는 잘났다거니 하면서 가끔씩 쿵쿵거리며 살기도 했는데 이번에 이 사람의 순발력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냉찜질팩을 득달같이 달려가서 가져오는 것을 보고 이 이가 내편인 게 확실해졌는지 그때부턴 볼이 아픈지 떼져 나간 건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저 머릿속이 환해지고 말았다. 지금도 얼굴은 멍이 들고 부운 상태이지만, 병원에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이 신나지니까 멍 정도야 시간이 가면 나아지겠지 하는 밝음이 생겨났다.
운동하다 다치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하는 건 늘 그래야 하지만, 어쩐지 이번 주말처럼 어떤 사람한테 얻어 맞고도 그게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