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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또르쟈니 Aug 05. 2020

생일 보내기

양념

  

 띵동!

 내일이 생일인 건 맞지만, 택배가 한꺼번에 두 개나 내 이름으로 도착하니까  진짜 생일이 오긴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해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느닷없는 선물에 뭘 먼저 뜯어봐야 하나 하고  있을 때 언뜻  라탄 뜨개실이 눈에 띄었다.  며칠 전부터 사달라고 졸라댔는데도 시치미를 뚝 떼고 있던 막내아들이 주문했는가 보다. 기다리고 사고 싶던 실이었던 터라  보자마자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테이프를 뜯고 열어보자, 색색깔의 실이 들어있다. 브라운, 카키, 포레스트, 연한 브라운  등등 제법 멋진 색으로 잘 샀다는 생각을 하고, 고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건 하나를  열어보고 나니, 다른 또 하나는 짐작이 잘 안 되는 그 무엇이어서  내내 궁금했다. 참지 못하고  큰딸에게 연락을 했더니  그럼 열어보라면서 킥킥거린다. 그래도 함부로  개봉하면 반품도 못할 테니  딸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일찍 귀가를 해 드디어 열 때가 왔구나  하고  하얀  비닐을 벗기는 순간 한 유명회사 로고가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에서나  드라마 등에서  가끔씩  차가운 도시의  여자를 연출할 때  보던  과일 그림이 그려진 그 무엇임을 집에서만 지내는 사람이지만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큰 애한테 상기된  목소리로 "이게 뭐야?"  그러니까 아이패드라면서 궁금하면 어서 풀어 보란다. 그러나 순간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보았다. 갑자기 아니 후다닥 가슴이 떨려오는 것이 바로 그것을  보기가 못내 아까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니야. 나 이 실로 이거  담을  가방  다 만들고  열어 볼 거야."라고 응석을 부렸다.


 생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큰애는 내가 선물 받은 라탄실로 새벽부터 뜨개질을 하고 있다. 자기 헬스 갈 때  물병 가방 한다고 뜨고 있다는데 언뜻 보기에 얼기설기  뜬 것이 카키와 갈색의  조합 탓인지 군인 아저씨 옷을  보는 것처럼 얼룩덜룩하다. 한 개는 이미 다 뜨고, 하나 더  시작하고 있다니 새로 산 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기고 그랬나 보다.  옆에서 실을 풀어 주기도 하고, 뭘  물으면 조금씩 알려 주기도 하고, 예쁘다고 칭찬도 하고, 또 물병을 넣었다 뺏다도 하면서 둘이서 새벽에 뜨개질을 다  하고 별일이다.


 시간은 금방도 간다. 휴일이고 내무반장인 나의 생일이기도 한 아침이 그사이 9시를 넘어가고 있다. 미역국을 끓여 준다던 막내아들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생일밥은 글렀나 보다 하고 꼬르륵 거리는 배를 어루만지려는데 큰딸이 "아! 다했다." 하고는  "엄마 미역 어딨어요?"  그런다. 어찌나 반갑던지  "응. 그거 식탁 앞 서랍 열어봐."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 쌀 씻는 소리, 마늘 투닥거리는 소리, 미역 볶는 참기름 냄새..... 주방 쪽이 한참을 소란하다. 그 틈을 타 얼른 애가 뜨던걸 참고해 어제 한 겹으로 시작한 아이패드 가방 뜨기를 두 겹으로 바꿔서 뜨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까 튼튼하기도 하고, 진도도 잘 나가고, 색감도 조화로운 게 더 나은 것 같다. 요즘 들어 뜨개질에 취미를 붙였던 게 도움이 되는지 아주 매끄럽고 비율까지 어울리는 게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조짐이 보였다. 밑부분은 짧은 뜨기로 해 얼추 3센티는 떴으려나 했을 때  "자, 식사하세요. 미역국이 왔어요!"  하고 외치는 소리가 작은방까지 들린다.


 식구가 다섯이니 밥. 국, 밥. 국, 밥. 국, 밥. 국, 밥. 국 하면 그릇이 이미 열 개다. 반찬은 어제 내 속으로 내 생일 준비랍시고 담아놓은 열무김치 하나다. 미역국에는 고기도 없는데 맛이 괜찮아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어제 내 속으로 내 생일 준비랍시고 짜 놓은 참+들기름을 넣고 압력솥에 끓여서 부드러운 거라나 뭐라나. 김치에 미역국 하나 놓고 우리 가족은 거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나도 같이 불렀다.  둘째가 옆구리를 스치면서 " 엄마. 내 꺼는 수요일에 온다네. 그런다. " 뭔데 왜 뭐길래 그래?"



 준비하란적 없는데 제각각 자기가 생각한 선물을 마련했나 보다. 왜 이리 설레는지.....



 생일이라고 설거지해주는 사람도 있고 해서 소파의 내 고정석에 앉아 아이패드 가방을 다시 뜨기 시작했다. 애들은 내 무릎 밑에서 맴돌면서 실을 풀어 주기도 하고, 어항에 먹이도 주고, 뭔지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있다. 나름대로 가장 멋진 가방을 떠야겠다는 생각에 황금비율도 생각하고, 색감은 잘 어울리는지, 규격은 적당한지를 요모조모 연구를 하면서 열뜨 했다. 점심때가 다 되어도 진도를 다 못 뺐다. 요즘 휴대폰 가방 뜨는데 매료되어 친구들 주려고 잔뜩 만들었을 때는 한 개  완성하는데 그리 고단하지가 않았는데 이건 크기가 벌써 서너 배는 되어서인지 다하려면 한참이나 걸리겠다.


친구들에게 갈 휴대폰 가방들

            


쉬기도 해야 해서 "아이. 아침엔 미역국 얻어먹었으니까 점심은 내가 해야지!" 하면서 "파스타 어때?" 그러니까 다들 오케이란다. 아침에는 고기 근처에도 못 갔으니까 파스타에 바짝 구운 돼지고기를 넣기로 했다. 운이 좋았는지 오늘따라 면도 말랑말랑, 돼지고기도 바삭바삭, 거기에 넣은 다진 마늘. 썰은 마늘. 토마토 등등이 잘도 어우러져 맛난 파스타가 되었다. 신세대인 큰 애가 많이 도와줘서 더 맛난 음식이 되었다. 까짓 거 몸도 풀 겸 설거지도 내가 하려는데 둘째와  애들 아빠가 같이 움직여서 또 한 번 설거지 면피!


 턱을 괴고 가방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자가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아이패드를 열어보고, 실행해 보고 싶어 안달이 난 큰딸이다. 계속 앞에서 내 가방이 완성되게끔 최선을 다해 보조를 자청하는 게 안쓰러워 공정 80% 정도에서 "얘. 그거 열어봐. 크기  한 번 재보자!" 말이 떨어지자마자, 득달같이 어제 택배로 온 물건을 담뱃갑 뜯듯하더니 " 와. 이거다!" 하면서 좋아한다. 애들 것으로 재보고 그보다 조금 넉넉하게 한 거라서인지 크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들뜬 그 사람은 새로 이것저것 장착을 하고 나는 부지런히 마무리를 향해 달렸다. 손잡이는 길게 해야 하나, 그리고 휴대폰 가방보다는 튼튼해야 되니까 두 줄로 해야겠다는 둥 궁리를 하고 있는데 자꾸 지문을 대라면서 귀찮게 한다. 엄마가 셈하느라 애 먹는걸 눈치챘는지 지문이 필요할 때마다 그 물건을 두 손으로 받쳐 들어 손을 갖다 대면서 자기는 지금 황제 의전을 하고 있다나 뭐라나. 이차저차  하다 보니 그 대단한 새물건은 얼추 나이 든 엄마가 쓸만하게 손봐지고, 가방은 큰애가 새벽 내내 뜬 물병 가방을 두 개나 다 뜯어서 만들었는데도 실 한 자 정도만 남기고 완성이 되었다.

생일내내  만든  아이패드용 가방


 그래도 덜 된 게 있는지  큰애와 작은애는 키보드 산 것을 무슨 역에  가서 받아 온다고 나가고, 막내는 직접 온다고 하고, 이 이는 자전거를 타고 온다고 한다. 따끈한 가방에 따끈한 아이패드를 담아 들고, 돌솥밥을 따끈하게 지어주는 밥집을 향해 경쾌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이 높아요



 이번 생일을 겪으면서 내가 나인 것처럼 느끼는 순간은 있었던 것  같다. 때때로 가족이든 친구이든 형제이든 간에 그 사이에서 은근한 양념 역할로 살 때 비로소 나는 나인 듯 여겨지곤 한다.

이 자리가 매콤해지기를 원할 때는 청양고추 한 꼬다리를.

아니면 상큼해졌으면 좋겠다 할 때는 레몬 한 조각.

또 고소해지기를 바랄 때는 깨소금을.



친구들에게 달려간  휴대폰  가방들(친구들도 방방 뜨게하는 나)

    



 이번 생일의 나는 아마도 가족을 방방 뜨게 하는 영양제 역할?

영양제도 양념인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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