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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경민 Feb 28. 2023

조직에서의 시간 공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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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목적으로 두고 근태를 평가하려는 이유는 개인이 쓰는 시간을 믿지 못해서다. 이 근태를 평가하기 위해 지각하지 않는지, 업무 시간에 자기 자리에 잘 있는지 등을 파악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얼마든지 딴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의 교도관 자베르처럼 채찍을 들고 일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래서 적용한 것이 칸반보드나 간트차트다. 어떤 시간에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하고 이를 공유해 관리자들에게 ‘내가 시간을 잘 쓰고 있음’을 설득해야만 하는 제도가 생겨났다.


관리자의 입장에선 실무자들이 일을 잘 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 완성된 것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조직의 성과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실무자들은 이런 시스템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실제로 한 일보다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한 일들을 제대로 정리해서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이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업무 효율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실무자들은 직접 일을 하는 것 외에 정해진 양식에 맞게 일을 기록해야 하는 업무가 새로 생겼다.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한 사람에게도 귀찮고 성가신 일인데, 이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들은 해당 제도의 도입과 함께 새롭게 배워야 할 업무가 생겨난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기록을 증거로 삼는 제도는 대화로 소통하면 더 적은 시간을 들여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일마저도 글로 소통하고 기록을 남기게 했다. 관리의 효율화를 위해 성과와 소통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 하나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관리자의 업무는 기록되고 공유되지 않아 이들이 하는 일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무자는 내가 사용하는 시간에 대한 증명으로 나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면 나보다 많이 받고 권한도 많은 당신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관리자들이 더 많은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무자의 입장에선 이걸 제대로 알 수 있는 경우가 적어 하는 일이 없어 기록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실체가 무엇이든 현 상황에서는 이러한 오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시간의 공유가 필요하다. 자신이 해 온 업무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어찌됐건 회사는 나의 고용에 대한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공간이기에 이러한 활동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무를 가중시켜서도 안 되고, 협업이 가장 중요한 업무 효율 상승 방법이 되고 있는 현대에 의사 소통을 저해해서도 안 된다. 안타깝게도 칸반보드나 간트차트는 90년대 공장에서 업무 효율화를 위해 생겨난 툴이다. 그걸 지금까지 적용하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간이 아닌 성과를 거래하기로 한 것과 충돌이 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시간을 채워라’라는 무언의 압박이 아니라, 변수가 무수히 많이 작용하는 성과의 영역에서(그래서 극단적으로는 성과는 운빨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 과정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보조도구로써 활용하는 것이다. 3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한 일이 5시간이 걸렸는데 거기에서 어떤 변수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 변수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 내가 직접 투자한 시간(과정)이 내가 창출한 성과(결과)와 결부되어 성과를 창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소명을 일일이 하지 않아도 된다.


관리자이건 실무자이건 자신의 시간을 공유함으로써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 이를 통해 회사의 모든 조직원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똑같은 일을 두세 번씩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하는 일들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인식하고 정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모든 오해와 비효율이 사라진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일일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설명 없이도 내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모두에게 공유할 수 있고, 실무자의 입장에선 관리자가 되기 위해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어떤 일을 더 할 줄 알아야 하는지 등을 파악하며 자신에게 부족한 역량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하면 소통도 활발해진다. 소통을 망설이게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서로의 시간을 침해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다. 다른 사람이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내가 괜히 말을 걸어서 집중을 깨뜨리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관련된 일임에도 대화를 미루거나 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면 이런 일이 줄어든다. 서로가 어떤 시간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집중하고 있는지 좀 쉬면서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서로의 시간을 침해할 것에 대한 걱정 없이 공유된 시간을 확인하고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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