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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Apr 01. 2020

임금 축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월급이 줄었지만 기분은 제법 괜찮다  


코로나19 팬더믹 시대를 살고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정부, 지자체와 주로 일하는 우리 회사 역시 모든 일이 올 스톱된 상태다. 들어왔던 일들까지는 어떻게 붙잡고 했지만 신규 프로젝트가 0에 수렴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여유자금이 생기면 그대로 빚 갚는데 쓰고 있는 전형적인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회사다. 그런데 지금은 그 독에 부을 물도 없는 상황. 회사가 많이 어렵겠다는 것 정도는 눈치껏 알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 남편이 먼저 3개월간 감봉 소식을 들고 왔다. 그제야 기사 제목으로 보던 경제 위기, 불황, 공포와 같은 단어들이 실감 났다. 아, 이게 남의 일이 아니었구나.

부끄럽지만 그제야 너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임을 깨달았고 지인들에게도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 역시 감봉이나 무급휴직을 각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긍정적인 신호가 많이 오고 있었지만 그 영향이 우리 회사까지 닿기엔 분명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이번 달까지는 어떻게 버티더라도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떤 공지가 내려와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부디 회사가 문 닫는다는 소식만 아니길 기도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다 같이 힘든 이때 내 월급 줄어든다고 징징거릴 순 없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그래도 외롭지 않게 같이 버텨보자. 아무리 내 살길이 먼저인 나라도 함께 허리띠 졸라매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오전부터 대표님과 임원들이 바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올 것이 왔구나 직감했고 아니나 다를까 대표님이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회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임금 축소가 불가피한데 임원들과 아직 정하지 못한 구체적인 수치에 대해 직원 입장에서 의견을 듣고 싶다 하셨다.

말을 전하는 대표님의 굳은 표정과 마른 입술에서 긴장감이 전해졌다. 아마도 직원들이 이번 결정에 대해 반발하지는 않을까 마음고생이 심하셨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평소 대표님과 의견이 잘 맞지 않는 편이다. 당연히 내가 부하직원이니까 늘 잘해야지 마음먹으면서도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과 다르게 어긋나곤 했다.

업무에 있어서도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아서 대표님 앞에서도 이건 아니다. 잘못된 것 같다 듣기 싫으셨을 말도 참 많이 했다. 바로 며칠 전에도 회사 홍보물 때문에 설전이 오가, 다른 직원들 등줄기로 땀이 흐르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어려운 상황에서 그래도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고 모두 같이 가려고 애쓰고 계신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월급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국가지원금을 통해 최대한 직원들 부담을 줄여주려고 노력하신 게 보였기에 이번만큼은 대표님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솔직히 이번 결정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이렇게라도 함께 해서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다면 다행인 것 같다고 담담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우리 직원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마땅히 함께 할 사람들이라고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고. 이 역시 진심이었다. 그 말을 마치자 대표님께서 나를 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지난 6년간 느껴보지 못한 마음인데, 그 순간 나는 대표님을 한 번 꼭 안아드리고 싶다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까지. 오늘 대표님, 사람 기분 참 이상하게 만드신다.     


"안개 팀장이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 회사는 오늘부로 주4일의 근무시간 단축과 임금 축소에 돌입한다. 모든 직원들에게 공지가 내려졌는데 다들 내 반응과 비슷했다. 당장 질러버린 카드 값이 조금 막막하긴 해도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잘 버텨보자는 반응을 비롯해 연차가 적은 직원들도 생각보다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주 4일을 해보겠냐는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고. 대표님의 걱정이 무색하게 우린 여느 때처럼 농담하고 웃고 떠들었다.        





이 어려운 상황이 짧으면 두어 달이 될지도 혹은 반년, 일 년이 더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한 것은 어려움을 너무 슬프지도, 가볍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함께 이겨내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기에 이런 방법으로 깨닫게 되어 조금은 아쉽지만, 늘 평행선만 그릴 줄 알았던 대표님과 나에게도 교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분명 슬프고 속상해야 할 날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기분이 괜찮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하고 있지만 마음의 거리는 제법 가까워진 것 같기도.





- 너무 오랜만입니다 :)  곧, 다시 자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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