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욕 대신 코어를 채우기로 했다
“회원님, 다음 수업이 일대일 마지막 회차인 거 아시죠?”
새로 옮긴 필라테스 센터에서 끊은 일대일 수업 10회권이 벌써 끝이 보인단다. 내 70만 원에 대한 유효기간이 이렇게 짧다니 믿을 수가 없다. 새로 옮긴 센터와 선생님이 나한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어 10회만 끊었더니 두 달도 되지 않아 이별 통보를 받았다. 우리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돈을 내는 것. 나는 고민에 빠졌다.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총 40회 정도, 일대일 수업을 받았다. 쓴 돈을 대충 비교하자면, 루이뷔통 매장에 가서 (고가 라인 제외) 가방 하나를 당당히 들고 나올 수 있는 가격이다. 처음에는 10회 정도만 일대일로 하고 그 뒤에 그룹 운동으로 옮겨야지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10회만으로는 기본기를 익히기에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 상태로 그룹수업에 들어갔다가는 따라가지도 못하고 자세도 제대로 못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큰 맘먹고 20회를 추가했더니 일대일 수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오롯이 내 몸에만 맞춰진 50분간의 수업으로 원했던 체형교정 효과를 얻었고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던 동작들을 하나씩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제야 내 몸과 친해졌다. 나의 근육 어디가 강하고 또 약한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근육을 정확히 느끼면서 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척추를 하나씩 접어서 내려가세요." 이 말이 무슨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더불어 그때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의 맛을 알았고.
혼자서도 이게 된다면 참 좋을 텐데.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고 그룹 수업을 들어가 보았지만 결과는 태초의 나로 돌아간 느낌. 그룹수업은 수업 자체의 호흡이 많이 달라서인지. 개인적으로 운동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수업이 너무 바쁘고 벅차게만 느껴졌다.
그렇다면 역시 일대일 수업을 계속해야겠지. 이번엔 너무 빨리 이별하지 않게 20회나 30회로 끊어야겠다. 그런데 정작 돈이 사람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운동을 하다가 가장 현타 올 때가 언제일까? 동작을 못 따라갈 때? 30분은 한 것 같은데 10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아니. 나는 내 월급을 떠올릴 때 가장 현타가 온다. 내 작고 소중한 월급에 50분 운동을 6-7만 원씩 내고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나는 한낱 먼지 같은 존재가 된다.
누가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내 몸을 위해서 쓰는 돈인데! 이러려고 돈 버는 것 아닌가 싶어서 아까워하지 말자 싶다가도... 백 단위의 돈을 파워 결제할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사고 싶었던 가방이라든지 가방이라든가? 가방 같은 거...
인정한다. 아니 왜 필라테스에서 가방이 나와? 이 의식의 흐름이 이해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더라고. 저 금액을 결제할 생각 하니까 가방부터 생각나는 걸 어찌하나.
마침 최근 눈에 들어온 가방이 하나 있었다. 그게 딱 일대일 40회권과 맞먹는 가격이고. 이제 이 고민은 필라테스와 가방의 싸움으로 번져갔다. 나에게는 제법 심각한 난제였다. 코어를 채우느냐 내 물욕을 채우느냐. 찜해둔 가방을 들고 있을 나를 상상하니 모습이 제법 근사하다. 그래 역시 물건으로 남는 게 최고지! 마지막으로 가방을 산지도 몇 년 됐으니 하나 살 때가 된 것 같다. 그런데 필라테스를 그만두면? 근사한 가방을 들고 서있던 내 어깨가 다시 말리고 등은 구부정해진다. 허리통증은 덤. 아, 영 폼이 안나잖아.
고민은 잠시. 결국, 내 통장 잔고는 필라테스 센터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명품 욕심이 넘쳐나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지나 있던 가방들도 팔아치우는 30대 중반이 되었기에 할 수 있었던 선택이려나. 이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오래 일할 수 없겠다는 위기감도 들고, 돈 없는 노후보다 근육 없는 노후가 더 힘들지도 모른단 생각을 종종 하기에. 코어에 내 돈을 걸었다.
열심히 운동해서 키운 에너지로 일을 하고 돈 벌어서 가방도 사지 뭐.
그렇게 올해 내 소비계획에 가방은 없는 것으로. 또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