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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Jun 14. 2021

왜 아이 안 낳는지 안 물어봐?

엄마 빼고 다 물어보는데


어느덧 우리 부부는 결혼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정신없이 살아오는 동안 나름 풋풋했던 동갑내기 부부는 어느덧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나이와 결혼 연차가 늘어날수록 당연하게  (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따라오는 질문들이 있다.

언제 좋은 소식 들려줄 거니? 아직 계획이 없는 거야? 아님 안 생기는 거야?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닌데 애 하나는 얼른 가져야지 등등.. 이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무례한 질문인 줄 모르지 않으면서도 기꺼이 내뱉는 말들.


 

그렇다. 우리는 아이가 없다.  딩크족이라 확언은 못하겠다. 아직 5년밖에 되지 않았고 나는 1년 뒤의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도 잘 모르겠는데... 평생 아이가 없을 것이라 단언하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살다 보면 딩크가 되는 것이 아닌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다. 남편도 그렇고. 아무튼 현재 출산 계획은 없고 남편과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결혼 전부터 결혼 후 지금까지 참 오래, 자주 이야기를 해왔다. TV 육아 프로그램을 보다가, 여행지에서 저녁을 먹다가, 집에서 술 한잔 하며 등등 겹겹이 쌓인 우리들의 이야기 사이로 ‘아이 계획 없음’은 계속 유지가 되어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분명히 둘이 함께 결정한 일이고 한순간의 쉬운 결정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말들은 잘도 따라온다. 특히 곁에서 지켜봐 온 분들보다 얼굴 한두 번 본 게 다인 어른들이 더 쉽게 말을 얹고.

-너희가 결혼한 지 얼마나 됐지?

-5년 됐습니다.

-근데 왜 아직 아이가 없어?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이 말이 나오면 잘 안 되기는 해도 표정관리를 하려 노력한다. 여자가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는 있어야 된다. 너무 욕심내며 살면 안 된다. (아이를 안 갖는 게 왜 욕심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말부터 혹시 피임하냐는 이야기까지 들어봤다. 남편이 정중히 중간에서 커트를 하기는 하지만 이미 내 자존감은 흡씬 두드려 맞은 후다.

 


아이 없는 부부는 저런 말들을 들어 마땅한 것일까? 남편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꼭 해야 하는 숙제를 하지 않아 혼난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다. 내가, 우리 부부가 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한 많은 것들이 '출산'이라는 단 하나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 서글프다. 나는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건강한 취미활동도 하면서 참 성실히 살고 있는데 저런 말을 듣고 오면 우리의 삶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라 며칠이 우울하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껏 나에게 아이에 대해서 묻지 않은 유일한 한 사람이 있다. 가장 궁금할 테고 또 가장 쉽게 나에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 바로 우리 엄마. 왜 엄마는 나에게 아이를 낳지 않냐고 말하지 않는 걸까? 우리 시어머니도 나에게 부담이 될까 남편에게만 넌지시 이야기를 하시지만 우리 엄마는 나에게 아이에 대하여 전혀! 1도 언급한 적이 없다. 이쯤 되니 오히려 내가 궁금해졌다. 엄마는 우리가 아이를 갖지 않을지 걱정되지 않는 걸까?



@unsplash



-엄마는 왜 아이 안 낳냐고 안 물어봐?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술도 한잔 걸쳤겠다 엄마에게 물었다. 결혼 후 5년 만에, 자식이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하다니. 그렇게 듣기 싫어하는 질문을 스스로 하는 꼴이 웃겼지만 엄마의 마음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엄마의 대답은 의외인 것 같기도 또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너네 부부 일인데 그걸 왜 내가 물어봐? 너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머리가 잠시 띵했다. 엄마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너무 무심한 게 아닌가? 싶어 서운하기도 한 대답.

-그럼 우리가 아이 안 낳고 살아도 괜찮아?

-너네가 그렇게 결정했으면 그런 거지. 엄마는 신경 쓰지 마.

 엄마는 늘 엄마를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내 엄만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고 해도 늘 저렇게 말씀하신다. 엄마는 다 괜찮다고. 너네 좋은 대로 하라고. 그래도 설마 아이 문제에 대해서도 저렇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지.



저 말을 듣고 고깃집에서 적잖이 울컥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아서. 딸이 뭘 해도 엄마는 괜찮다는 마음이 전해져서 지금껏 받았던 상처까지 보듬어주는 것 같았다. 정말 내가 어떤 결정을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괜찮겠구나 싶어서.

나이가 들고나서는 내가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마음이 늘 컸는데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그저 돌봄을 받고 있는 딸이었다. 뭘 해도 예쁘기만 한 딸은 아이를 낳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 거구나.

이제야 확인한 엄마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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