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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Apr 20. 2022

백수여, 너 자신을 알라

3월이 순삭 된 어느 백수의 자아성찰기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백수가 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으나 의미 없이 바빴다. 퇴사하기 전에는 퇴사만 해봐라. 놀고, 쉬고, 공부하고 어?! 못할 게 뭐냐며 큰소리쳤다. 그동안 대부분의 것들을 일 다음으로 미뤄 놓기 바빴으니까. 이제는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나를 앞세우겠다 다짐했는데... 정작 한 달 동안 나는 놀고, 쉬고, 공부하고 어?! 그중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정말이지 이런 건 계획과 다르다고!



솔직하게,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성실하디 성실한 직장인으로 십 년을 넘게 보냈다. 더 이상 월급이 없다는 게 직장인에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4대 보험이 없는 삶은? 상상이나 되냔 말이지. 그렇게 귀헌 월급과 4대 보험을 반납하고 어렵게 얻은 자유다. 그런데 자유를 얻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나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을!     


참 웃기는 일이다. 쉬고 싶다며, 놀고 싶다면서 정작 나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사실 틈이 필요하다는 것도 몰랐다. 백수가 되고 많은 불안이 한꺼번에 찾아왔지만 가장 큰 것은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얻은 이 꿀 같은 시간을 허투루 쓸까 봐 두려웠다. 백수의 시간을 1분 1초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사명이 솟아났다.

더 이상 직장인 신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구한 개미답게 바빠야 마음이 편안했다. 자유를 찾아 밖으로 나왔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도태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인생의 3분의 1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퇴사했다고 해서 당장 태생이 베짱이인 것처럼 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서 뭐라도 하려 발버둥 쳤다. 일단 매일 규칙적으로 노트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촌스러울지 몰라도 무거운 엉덩이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서. 일단 해보자! 마인드로 덤벼들었다. 순서를 지키지 않고 욕심만 앞서 간 거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무작정 글을 써 내려가 보고, 방향은 모르겠으나 되는대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카페에 앉아 그냥 쓴다 


빵과 커피를 곁들여 쓴다


그 결과, 3월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노트북에는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는 글만 수두룩 하게 쌓였다. 민망한 말이지만 쓰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니니까 당연하다. 불안한 나를 달래주는 도구로 쓰인 글의 최후는 휴지통이다. 그렇게 망한 글들은 브런치에 업로드되지 못했고 휴지통 배만 두둑이 불려주었다.

그렇다고 제대로 놀기라도 했음 억울하지라도 않은데... 그러지도 못했다. 동네 카페 몇 군데를 글 쓰는 척, 일하는 척, 돌아다닌 것이 전부다. 음. 이건 그냥...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눈치가 보였기에, 작정하고 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달래주는 행위였다. 나 말이야. 놀면 안 되겠지? 멍 때리면서 하루를 보내는 건 아무래도 한심하지? 나에게 자꾸만 되물었다.

그렇게 노는 게 불편하다면 공부라도 하자 싶었다. 건설적인 백수가 되어 보는 거야! 

그런데 뭘 배우면 좋을까? 취미로 할만한 것? 아니면 일에 써먹을 스킬? 

바로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에 대한 답이 비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유레카!



대체 나의 백수생활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래. 이게 없었다. 목표가 없으니 방향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던 거다.

목표를 가지려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바라봐야 하는데 나는 그 시간을 아까워했다.

아까워할 게 따로 있지. 회사에서 나를 돌아볼 시간을 주지 않아 하염없이 시들어 버려 놓고서는 스스로에게도 똑같이 굴었다. 지쳐버린 계획형 인간이 무계획 퇴사를 했다면 그것부터 돌아봤어야 맞았다. 나에게 퇴사가 가지는 의미와 지금이 어떤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지 자신에게 먼저 물었어야 맞았다.


이 당연한 의문을 3월과 4월의 반절을 날려버리고서야 깨우쳤다!


어쩔 수 있나. 시간도 많으니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백수여, 너 자신을 알라.

그러면 더 나은 백수생활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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