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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

그들에게 아메리카노를

by 보통의 기록

나의 아빠엄마는 관성대로 사는 사람이다. 이사를 하더라도 오래 살던 동네를 벗어나길 싫어하고, 항시 가는 음식점에서만 외식을 한다. 주말이면 같은 산에 오르고, 가는 절에 매번 들린다. 잠은 집에서 자는 걸 좋아해서 2박 3일 이상 객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하지 못한다.

그에 반해 나는 새로운 곳을 좋아했다. 비행기를 타는 게 좋았고 집에 하루 종일 있는 것을 못 견뎌했다. 이제야 나이가 들어 집이 좋고, 행동반경이 넓어지는 게 싫어졌지만 나의 아빠엄마에 비하자면 가본 길보다 가보지 않을 길을 택하는 게 나의 기질에 가깝다.

엄마의 54살 생일에 커피머신을 선물했다. 작년부터 엄마는 조금씩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야 하는 마음 상태인 것 같다. 커피믹스만 먹던 그들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라테를 마시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자고 하면 기꺼이 시간을 내어 본래의 행동반경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베스킨라빈스의 31가지 맛 아이스크림에 빠지기 시작했다.

포트기에 물을 올리고 커피믹스를 털어내고 휘휘 저어 먹는 것에 익숙한 그들에게 커피포트를 선물했다. 아직 조작법을 잘 모르지만 매일매일 사용설명서를 펼쳐보곤 하나보다.

30살을 앞두고 나는 조금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과 함께 할 시간이 이제 내가 살아온 날보다 짧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죽음이란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해서 종종 마음이 쿵쾅댄다.

나는 그들에게 아메리카노를, 커피머신을, 베스킨라빈스를 끊임없이 보급하는 물주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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