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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 대한 어떤 것(10/16)

또 다른 생각을 물지 않은 생각들 

# 할매는 찡그리며 웃는다. 그래서 할매가 아픈 와중에 웃는 것인지 정말 웃겨서 웃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 나는 할매를 좋아하지만, 그것은 할매가 다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할매는 다정하지 않은 편이다. 스킨십이나 애정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할매의 표현은 이런 식이다. 내가 두어 번 "할매는 내가 오는 게 싫은가 보네잉~ 이제 안 와야 쓰겄다"라고 하면 그제야 "아니, 오면 반갑고 좋제"라고 말한다. 물론, 할매가 가진 약간의 무뚝뚝함과 할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전혀 별개의 것이므로, 난 여전히 할매를 사랑한다.  



# 할매를 만나러 가기 전, 요양원 근처의 쉼터에서 빵으로 아점을 먹었다. 식이섬유 두유도 마셨다. 평화롭고, 한산하고,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어쩐지 기분이 무척 좋았다. 


# 할매를 보러 걸어가는 도중에 두 어번 나비를 봤다. 역시나 나비축제의 고장 함평이라고 생각했다.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무늬를 가진 나비였다. 


# 할매의 요양원 근처에 사는 친척집에 가야 한다. 그다지 왕래가 없어 몰랐는데, 그 집 아들(내겐 사촌오빠)이 결혼을 했고, 심지어 얼마 전에 아기까지 태어났다고 한다. 나는 엄마에게 문자로 "몰랐지만, 결혼식도 안 가서 미안하니 어떤 선물을 주면 좋을지" 물었다. 백화점 상품권이나 아기 옷 정도를 생각했다. 곧 엄마는 전화로 "아, 무슨 선물이야 비싸"하면서 과일이나 사 가라고 했다. 몇 번이나 반복하며+언성을 높여 말해서 매우 짜증이 났다. 엄마와의 대화하다 보면 기분이 안 좋아질 때가 상당히 많다. 나는 의견을 구한 것일 뿐인데 말이지. 이 세상에는 분명히 가끔 봐야 좋은 부모와 자식도 있다. 아마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지금을 어떻게 돌아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할매는 내게 무척 중요한 사람이고, 지금은 중요한 시간이므로, 나는 지금의 이 감각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대상이 할매일 뿐 이전에도 수 많은 '기억해야 할 그 때'들이 있었다. 그에 비해 기억나는 것은 많지 않다. 그래도 노란빛의 아련한 필터로 담긴 날들로 기억하고 싶진 않다. 혹시나 내가 이 시간을 '할매가 떠나기 전 아름다웠던 16일'로 기억할까봐 두렵다. 그것은 너무 역겹다. 나는 할매를 항상 생각했고, 잠시 몸까지 할매 곁으로 옮겨와 지냈다. 필연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수 많은 기분을 느꼈다. 좋고 나쁨, 빠르고 느림, 초조와 분노, 익숙과 낯설음부터 대면과 회피까지 기분이 아닌 것들까지 느꼈다. 어떤 비유법으로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을 느꼈다. 지금도 잘 설명하기 어려운데, 나중에 할 수 있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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